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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20. 2020

내가 판단하는 나, 남이 판단하는 나 ​

'자신을 하찮게도, 과하게도 여기지 않는 지혜'


연례행사인 승진자 발일이 다가오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초시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절망스러운 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게 싫었다. 시시때때로 '난 안 될 거야'라고 여겼다. 상사가 내 업무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걸 느껴온 터였다. 다른 팀원에 비해 업무 비중도 밀린다고 생각했다. 의욕이 점점 떨어졌다. 발표 일이 다가올수록 업무 효율성은 바닥을 쳤다. 순간만 잘 버티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지는 게 직장생활이라는 걸 잘 안다. 오래전 대리 진급 누락 경험도 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니, 회사에 나오기가 지독하게 싫었다. 무능함을 직접 확인하기가 겁났다. <진급에 떨어졌을 때 셀프 위로 방법>이라는 글을 호기롭게 쓴 적도 있지만, 인간인지라 내 얘기가 되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하고 치기 어린 심술을 부렸다. 수년간 녹슨 이력서를 손봤다. '평소 관심 있는 일에 도전해 볼까?'라는 공상도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승진했다. 놀랐다. 상사의 피드백도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사실과 뭔가 다르게 돌아갔다.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머릿속에서 많은 순간이 교차했다. 그동안 묵혀온 생각을 한 꺼풀 벗겨내면서 깨달았다. '내가 판단하는 나'와 '남이 판단하는 나' 사이의 괴리가 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욕심이 과했다. 과도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나는 자신 앞에서 무능한 사람이 됐다.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깨는 무거워지고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도 덩달아 늘어났다. 벅찬 부담스러움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욕심을 머금은 부담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스스로를 난처하게 만들어 초라한 모습으로 바꾼다. 얼마 전까지 내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은 조금 달랐다. 돌이켜 보면 열심히 한다고도 했고, 잘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과한 욕심과 침침한 불안을 걷어낸 뒤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기준이 중요하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과하면 절대 좌절감을 쉽게 맛본다. 수시로 무능해진다. 기준이 너무 낮으면 자신을 맹신한다. 둘 다 결과는 별로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면 쉽게 위축되고, 과대평가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비축한다. 자기 자신을 비약하지도 맹신하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세상에서 제일 흔한 명언이 사실은 제일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의 저서 <초격차>에 평가와 보상의 '4P 시스템' 원칙이 등장한다. 4P는 Pay, Performance, Promotion, Potential이다. 성과를 낸 사람은 돈으로 보상하고, 성과는 떨어지지만 잠재적 성장 역량이 있는 사람에게는 승진으로 보상하라는 권 회장의 원칙이다.


승진은 한 번의 성장 기회를 더 얻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다. 회사를 향한 굽신 거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도, 과하게 여기지도 말아야 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내가 판단하는 나'와 '남이 판단하는 나'는 다르다는 사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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