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많다. 입지 못하는 옷도 많다. 세월 덕에 배가 나오고 살이 찌면서 체형이 변해 버렸다. 이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겠다. 포기해야 하는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까끔씩 꺼내 입으면서 실망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맞을 것 같다. 옷도, 막연한 바람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날씬한 옷들은 벽장 속에 갇혀 나날이 먼지만 쌓이며 낡고 있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친구가 많다. 만나지 않는 친구도 많다. 세월 덕에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지내는 환경이 변하면서 마음도 변해 버렸다. 이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겠다. 포기하면 되는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가끔씩 연락하거나 만나면서 실망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좋은 관계가 될 것 같다. 사람도, 막연한 바람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숫자로 남겨진 이들은 휴대폰 속에 갇혀 나날이 기억에 묻히고 있다.
가깝게 지내던 누군가와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미련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은 사랑을 시작했던 당시 마음에 미련을 둔다. 그때 감정이 진심이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기에. 사람의 체형이 변하듯 마음의 모습도 변한다는 걸누구나 경험을 통해 배운다. 애써 부인하고 싶을 뿐, 혹시나 하는 기대와 미련이 부르는 착각이다.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던 연인이 있었다. 만남이 반복될수록 더욱더 삐걱거렸던 건 서로가 첫 만남의 감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였다. 사랑했던 마음이 이미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였다. '넌 나에게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서로의 착각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인데 '네가 변했어'라는 착각이기도 했다.
내 몸이 한결같을 수 없듯 누군가에게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기대할 수 없다. 비상식적이자 비현실적인 욕심이다. 세월은 사람의 몸과 마음의 모양을 수시로 바꾼다. 시간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면 실망과 허탈함에 사로잡힌다. 오래 만난 연인에게, 오래된 동료에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낯선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너 변했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도 변했지'라고 받아 들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소설 <나이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구절이다. 애써 과거의 내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절정에 다다랐던 소싯적 과거를 기대할 필요 없다. 희미한 과거보다 중요한 건 또렷한 현재를 대하는 마음이다.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편하듯, 마음이 동하는 사람과 어울려야 진정한 나를 드러낼 수 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은 튀어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변해갈 때 미련스럽게 과거에 집착하는 건 서글픈 고집이다. 미련이라는 집착을 버리고 아쉬움이라는 착각을 놓아 버릴 때 나에게 꼭 맞는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