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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06. 2020

헛된 기대가 남긴 원망과 관계 훼손

'수시로 부탁할 자유가 있듯, 수시로 거절할 자유도 있다'


직장인 약 68%가
거절을 잘 못한다.


아르바이트하면서, 계약직 생활을 하면서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화가 나기도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헛된 욕심이었다. 생존과도 연관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상사나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컸다.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른인데도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필요한 노력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짓이다.


직장에서 타인의 욕구 충족계속 신경 쓰면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는 독이 되어 서서히 몸에 퍼지고 평범한 일상을 뒤다. 진심 어린 배려가 결국 배신으로 돌아온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약 68%가 거절을 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절이 힘든 이유는 거절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인에게는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일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누가 부탁을 하면 Yes를 남발했던 때가 있다. 팀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서로 눈치 보는 상황이 불편해 먼저 나섰다. 바쁠 때도 '내 몸이 조금 피곤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솔선수범해 OK를 외쳤다. 상대는 흔히 '정말 고마워, 다음에 내가 꼭 보답할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답은 말로 끝이다. 보상을 기대한 일은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상사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상사를 욕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그 원망은 나를 향해 있었다.


수년 전 바쁜 팀장의 온라인 강좌 시험을 대신 봐준 적 있다. 자기 계발을 위해 개인이 신청한 영어 프로그램이었다. 진도에 맞춰 시험을 보지 않으면 수강료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 상사 수강료 절감을 위해 금 같은 내 시간을 내줬다. 다른 팀원들은 팀장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그러지 못하고 떠안았다. 한두 번은 배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려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주로 시험 마감일에 부탁하는 바람에 친구와의 약속을 깨고 집에 가 시험을 보기도 했다.


상사를 욕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그 원망은 나를 향해 있었다. 다른 동료들처럼 거절하지 못한 모자란 놈이 보였다.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은 뻔했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막연한 이익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역시 너밖에 없다", "내가 밀어줄게"라는 영혼 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무작정 믿고 싶었다. 인사고과 시즌에 정작 상사에게 들은 말은 "미안하다. 내년에는 밀어줄게"였다. 인사고과는 업무 성과로 평가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래저래 이용만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누군가를 도와줬는데, 상대방은 당신이 도와준 사실조차 까맣게 잊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내가 해줬으니, 상대도 당연히 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을 테니까. 세상 모든 사람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상냥한 태도는 영혼을 매료시킨다.


현대판 성서라 불리는 <예언자>의 저자 칼릴 지브란은 미모의 아름다움은 눈을 즐겁게 하고, 상냥한 태도는 영혼을 매료시킨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승낙이나 거절이 아니라 태도다. 상냥함과 진심을 담아 거절하면 상대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더불어 섣부른 승낙으로 인한 기대라는 부작용도 사전 예방할 수 있다.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거절이 필요한 순간의 단호한 선택은 직장에서 주체적 생활을 위한 첫걸음이다. 내 마음, 내 생활을 먼저 돌봐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든데 굳이 남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줄 필요 없다는 거다. 남들이 수시로 부탁할 자유가 있듯 당신에게도 수시로 거절할 자유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베푸는 선행은 막연한 기대를 동반하기 때문에 결국 이용당했다는 비참함, 억울함 남긴다. 상처 받는 건 자신이고 그로 인해 남는 건 상대에 대한 원망과 관계 훼손뿐이다. 헛된 기대로 나 자신을 혹사하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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