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개무량하게 구독자 6,000명, 누적 방문자 400만을 돌파했다. 브런치는 2016년 봄 스리슬쩍 내 삶에 들어와 기회와 도전, 설렘이라는 짙은 흔적을 남겼다.
브런치의 조상 격인 다음 티스토리에서 2010년 8월부터 직장생활 관련 블로그를 운영했다. 꾸준히 글을 쓰니 여러 기업에서 블로그, 사보 등에 실을 원고 요청이 이어졌다. 강의 요청도 받았다. 한 번. 풋내기 직장인의 삶에 대단한 변화였다. 그런데 책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웃 블로거들이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나는 부러움과 초라함을 느꼈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늘 묵직하게 가슴에 머물렀다.
남몰래 책 목차를 정하고 기약 없는 원고 정리를 하던 어느 봄날, 인터넷 바다에서 브런치를 발견했다. 매년 공모전을 벌이고 당선작을 책으로 출간하는 플랫폼이었다. 유레카! 이미 책 목차를 작성 중이었던 터라 작가 신청은 껌이었다. 과한 내용으로 작가 신청을 했고, 의심의 여지없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브런치에 글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티스토리 글을 복붙하는 게 일이었다. 어느 날 한 이웃이 댓글을 남겼다.
"하루에 글을 세 개씩이나 쓰시고 대단하시네요."
누군가의 관심에 내 글을 다시 정독하다 깨달았다. 칭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급스러운 브런치에 수준 낮은 내 글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때부터 블로그 글을 복사해 브런치가 아닌 워드에 붙였다. 수치스러운 글을 해체해 다시 조립했다. 이런 식으로 30여 개의 글을 브런치에 올렸을 때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획 회의를 거쳐 방향을 정했다. 목이 상당히 말랐던 터였다. 이 갈며 썼던 글에 과한 열정을 담아 다시 갈고닦았다. 야심 차게 1차 원고를 보냈다.
"이 정도 분량이면 600페이지의 대작이 나올 거 같아요.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출판사의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 민망하게 너무 과했다. 대작 사건부터 대통령 탄핵 등 우여곡절을 거쳐 내 이름 박힌 첫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출판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우수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첫 자식 자랑.
첫 책이 나온 날, 다른 출판사에서 두 번째 출간 제의를 받았다. 대작이 되지 못하고 남은 원고가 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점점 더 글 쓰는 재미에 빠졌다. 이어 브런치 매거진에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 덕에 한 번에 세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는 호사도 누렸다. 같은 시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도 독점 연재 제의를 받았다.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열심히 쓰고 신나서 또 썼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브런치에서 수년간 호사를 실컷 누리다 돌아보니 어느덧 누적 방문자 400만 명을 넘었고, 구독자는 6,000명이 되었다. 아내와도 안 챙긴 기념일 계산기를 돌렸다. 1,589일이었다. 매일 3.77명이 내 브런치를 구독했고, 매일 2,530명이 브런치에 방문했다. 고맙게도 브런치가 여기저기 내 글을 너그럽게 노출해준 덕이다. 당연한 듯 감사 인사도 없이 여태껏 그저 받아먹기만 한 거 같다. 글을 읽어준, 브런치를 거쳐간 모든 분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덕분에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행복할 거라고.
감개무량하면서 동시에 반성도 했다. 시간과 실력은 없어도 노력과 열정으로 글을 썼던 때가 분명 있었다. 요즘 나는 변했다. 가뭄에 콩 나듯 대충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발로 쓴 건 아니지만 처음보다 노력과 열정이 덜 들어간 건 맞다. 자가 검열도 느슨해졌다. 심지어는 브런치 매거진 구분도 없이 온갖 글을 아무 데나 쑤셔 넣고 있었다.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고 뜨끔했다. 브런치와 모든 작가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나만 변한 기분, 의욕과 열정이 가출한 기분이랄까. 구독자 6,000명을 바라보며 초심을 되찾았다. 왠지 모를 설렘이 다시 스며들었다.
6,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용기이자 응원이다
내친김에 오밤중에 브런치에 널린 글을 정리했다. 글 성격에 따라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었다. 미루고 미뤘던 브런치북도 한 권 발행했다. 왠지 모를 흐뭇함이 밀려들었고, 왠지 모를 설렘이 다시 가슴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