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말을 내뱉을 때 또는 상대의 말에 허를 찔려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다.
주니어 시절에는 후자의 상황에 처해도 그러려니 했다. '배우면 되지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쓴소리는 곧 세월 속에 쓸어 담지 못한 부족함을 의미했다.
상사에게, 후배에게 무능함을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는 나를 수시로 발견한다. 누군가 나를 지적하면 평온한 얼굴 이면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 부족함이 유발하는 울컥이다. 앞으로 다가올 리더의 길을 좀 더 당당하게 걷기 위해 마음속 깊이 간직한 나의 부족함을 고백해 본다.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한다.시키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낫다. 고로 리더십이 부족한 편이다. 후배를 대범하게 보듬지 못한다. 멘탈이 약하고 예민하다. 싫은 소리를 못한다. 쉽게 상처 받고, 사소한 일에도 많이 신경쓴다.'
리더로 성장하는 귀로에 서있다. 그래서 더더욱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누군가 내 약점 담긴 얘기를 전하면 속에서 화가 난다. 이미 그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수십 년 단점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크게 부족한 부분은 귀담아듣고 고치려고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라고. 적당히 살자'라는 마음이 수시로 들썩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대로 제대로 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유능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결점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 동기부여가 되고, 드러내야 개선할 수 있다.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서 나를 꾸짖어 주시오. 나는 고결하지도 나랏일을 잘하지도 못하오. 하늘의 뜻에 어긋난 점이 분명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내서 나로 하여금 꾸짖음에 답하게 하시오."
세종대왕의 역사를 기록한 <세종실록>에 담긴 말이다. 나라님도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했다. 현실 세계의 많은 리더가 자신의 부족함 외면하고 숨기는데 급급하다. 누구나 귀가 즐거운 말만 듣고 싶다. 가부를 떠나 쓴소리는 싫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있다. 리더도 인간이다. 모를 리 없다. 그저 결핍을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미약하게나마 완성된 자신이 부정당한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자리에 오른 자부심이 큰 만큼 싫은 소리에 더민감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더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진다. 부하직원들은 상사를 떠받든다.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다. 그들의 감언이설에 리더는 현혹된다. 점점 더 자리가 만드는 권력에 집착하면서 싫은 소리를 거부한다. 귀를 닫는 방법을 택한다. 이런 상황과 시간이 쌓이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뇌가 변하기 시작한다.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저서 <승자의 뇌>에서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권력에 중독되면 목표 달성과 자기 고집에 집중하면서 공감능력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뇌의 호르몬이 변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읽고 재구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섬엽의 특정 기능이 저하된다는 이론이다.
권력을 가진 리더는 쓴소리 들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쓴소리에 대한 내성이 점점 약해진다. 권력의 무게에 눌려 주변에서 할 말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경험을 잊는다. 좋은 말만 들려오기 때문에 리더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윗사람에게 도달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걸러지고 걸러져 보기 좋게, 듣기 좋게 포장된 말만 남는다. 리더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한 대기업 임원이 회의 중에 말했다. "나한테는 다 좋은 말만 하니까. 눈치 보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유독 맞는 말을 많이 하던 직원을 임원이 지방으로 보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진짜 리더가 되는 길은 이처럼 어렵고도 험하다.
선후배에게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서 나를 꾸짖어 주시오'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조금만 나를 내려놓고 쓴소리도 묵묵히 흡수해 개선한다면 조금 더 롱런하는 리더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