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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10. 2020

직장인이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

'행복해'라는 말을 영영 잃어버린 기분


어쩌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행복과 기쁨이 아닌
포기와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는 후배는 시종일관 과중한 업무의 피곤함과 회사가 선사한 불행 한 보따리 풀었다. 일상의 못마땅함을 가득 품고 자신이 얼마나 회사에 헌신하는지 털어놨다. 얼마 뒤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포기 선언을 했다. 이직으로 분노를 다스렸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 윗사람의 깊은 총애를 받는지에는 무관심했다. 사람은 편협한 자신만의 기준을 품고 살아간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남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편협하게 살고 있다. 정받는다는 걸 빼면 후배 다를 바 없다. 원래 그랬던 지, 시나브로 물들었는지, 세월이 하 수상해서 잠시 정신이 나간 건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행복해'라는 말을 영영 잃어버린 기분이라는 사실이다. 일상에서 회사에서 가정에서 얼마나 행복한지가 아닌, 얼마나 힘든지를 먼저 보여주려고 용쓰며 사는 나와 마주한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취급받는 줄 알아?


회사 발전에 일조하기 위해 출근한다고 생각한 적이 언제였더라? 월급에 희생당하러 기어나간다는 잡념만 가득하다. 일할 직장이 있기에, 꼬박꼬박 월급을 받기에, 가족과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부인하기 바쁘다. 자아실현을 위함이 아닌 시간과 자존심을 바치러 직장에 나간다는 걸 보여주려 애쓴다. 가족에게도 행복과 즐거움보다 그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지를 보여 주고 싶어 안달하기도 한다. 친구가 부부싸움을 하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취급받는 줄 알아?"라고 소리쳤다. 후배들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하는데 익숙하고, 선배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 표정으로 보여준다.


'나 이만큼 힘들어 누가 좀 알아줘!'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텅 빈 허공에라도 발버둥을 친다. 휴대폰을 만질 수도 없을 만큼 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인파에 압사당하기 직전 생각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지?' 한 여름 한없이 땀 흘리며 사람들과 부대낄 때도, 한 겨울 롱패딩 입고 지하철 안에서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치졸한 속마음일 뿐이다.


현대인은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삶을 내어주고 고통을 감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는 듯하다. 나 역시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면 긴 한숨부터 밀어낸다. 이 또한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기척이다.


"뭐, 해먹고 살 게 그렇게 없을까? 직장인 밖에?"

"그래도 누군가는 너무도 다니고 싶어 하는 곳이니까 일단은 다니는 걸로 해요."


한참 어린 후배지만 선배의 우문에 넉넉한 마음으로 위로를 내어주었다. 삶이 기쁨만을, 행복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안다. 하지만 고통의 강도를 감당할 수 없는 증거가 속속들이 등장하면 겁부터 난다.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괴로움에 허우적거리 스스로를 감당하기 벅차 무작정 도망치고 싶은 직장인의 단순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직장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포기와 분노가 아닌 나를 좀 봐달라는
외로운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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