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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4. 2020

화를 끊고 얻은 공황장애

'모두가 저마다의 화를 참으며 살지 않을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세상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 낸다.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과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어 쓰려졌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주변 친구들이 말했다.


"얘, 참다가 화병 걸렸잖아."


친구들은 공황장애를 화병으로 치부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친구는 해야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다. 화가 나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친구가 변해 버렸다. 친구는 아이들 앞에서 아내와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화를 참는다고 했다. 부부싸움을 할 것 같으면 입을 닫았다. 아내가 싸움의 빌미를 제공해도 말을 아꼈다. 화를 조절하지 못해 매번 자신이 사과하는 상황이 반복돼 지쳤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 잘못 아닌 일에도 늘 사과는 내 몫이더라고. 그래서 참고 사는 중."


싸움이 싫어, 사과하는 것이 싫어 친구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속에 쌓인 것들이 공황장애로 분출됐다고 진단을 했다. 전적으로 친구 사적 영역의 일이라고 해도 큰 공감 포인트가 있었다.


다툼을 극도로 싫어한다. 괜한 에너지, 감정 소모라고 여긴다. 불편한 마음이 야기하는 피폐한 기분이 싫어 적당히 화를 참고 입을 닫고 산다. 다툼의 귀로에서 누구 한 명만 전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때문에 누군가와 대립할 때 분노 조절에 실패하는 사람이 사과하는 상황을 자주 봤다. 흔한 일인 만큼 경험으로도 깊은 깨달음을 얻은 바 있다.


집에서는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욱할 때도 있었다. 결혼해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불같이 화낸 적 있다. 잘잘못을 떠나 감정 조절에 실패한 죄가 가장 크다. 아이들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라는 걸 잘 알기에 수시로 마음을 다스다. 친구 말마따나 상대의 도발에 강도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화 유발자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내면이 거부하는 감정 소모는 불필요한 감정 폭풍을 몰고 온다. 차라리 입을 닫고 말지라는 생각에까지 이곤 한다.


"너 자신의 영혼을 깊이 바라보라. 그리고 먼저 너 자신에 대해서 배워라. 그러면 왜 당신이 이러한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당신은 이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했다. 마음의 병을 얻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수시로 돌아보고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참고, 감정을 적당히 드러내야 마음이 병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은 어쩌면 가슴에 시폭탄을 품고 사는 일이고, 마음이 시드는 지름길 일지도 모른다.


친구 아버지는 말이 없다. 친구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쉴 새 없이 못마땅함을 쏟아 낸다. 묵묵부답이다. 친구 누나는 말한다. "우리 아빠 진짜 착하지?" 하지만 동병상련의 친구는 알고 있다. "아빠 싸우기 싫어서 말을 안 해" 아버지는 나름 치열한 내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공황장애 진단을 듣고 마음이 휘청거렸다. 호기로운 시절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집에서 감정을 숨기는 순간이 점점 늘어 간다. 어찌 보면 마음이 피폐해지는 과정다. 무조건 화를 참고, 입을 닫는 건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피하고 싶은 현실에서 일시적인 도피라는 것을 잘 안. 싸우기 싫어서, 먹고살기 위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이라면 너무 서글픈가. 나 자신만 쳐다보며 달리던 시절 부지불식간에 지났다. 이제는 둘러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특히 내 마음이 병들지 않게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는 걸 하루하루 깨닫는다.


문득, '내 아빠도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관이 뚜렷한 아빠는 감정 표현에 자유로웠을까. 모를 일이다. 모든 고뇌와 분노, 사랑, 기쁨, 행복, 냉철함에서 배어나는 진짜 감정은 자기 자신밖에 모를 테니까. 친구도 나도, 친구 아내도, 아빠도, 친구 아빠도, 친구 엄마도, 시시때때로 호탕한 누군가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세상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 내고 있다.


대인의 숙명이자 숙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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