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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24. 2021

한낱 피곤함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부모와 자식 간의 오해가 만든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


어쩌면 이 말은
피곤한 부모의 쉼에 대한 갈구와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의
작은 오해가 만든 결과물 아닐까?


기분 좋게 와인을 한 잔 마시고 귀가했다. 도착하니 오후 10시경. 모두가 잠든 적막한 현관으로 반려견이 아닌 딸내미가 제일 먼저 달려와 아빠를 맞았다.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딸아이는 다음날이 온라인 수업이라 늦게  된다면서 서재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 초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장 선거 이야기, 등교할 때 버스에서 만난 같은 반 남학생이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 성교육 이야기,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아 중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피아노 학원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 심지어는 피아노 셔틀 안에서 운전하시는 분과 나눈 이야기까지 꺼내 놓다.


귀찮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딸아이 이야기를 들으니 중학교 첫 등교날이 떠올랐다. 커다란 교복을 입고 언덕길을 오르 장면도 눈에 선하다. 이런 추억담으로 시작해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해 주셨던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딸에게 털어냈다. 둘째 이야기도 나눴고, 나름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공부 이야기도 꺼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됐다. 얼른 자라며 딸아이를 밀어냈다.


며칠 전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대화 나눴던 일이 떠올랐다. 한 친구가 중학교 1학년 딸내미가 쳐다보지도 말고, 웃지도 말라고 했다는 한탄을 털어놨다. 주말에 애들은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아 밥 혼자 먹는다는 친구도 있었다. 구들은 <품 안의 자식>이라는 공식에 상황을 대입해 답을 찾아냈다.



지난주 엄마 집에 갔을 때 아빠가 1974년 12월 16일부터 약 1000일간 써놓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누나가 태어난 날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쓰인 일기. 부모가 된 아빠의 다짐과 구구절절 딸 사랑이 넘치는 글이었다. 하지만 약 50여 년 전 아빠들은 자식 사랑을 침묵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아빠 사랑을 자식들이 쉽게 눈치 못 채지 않았을까.  내 아빠 역시 글로만 사랑 표현에 능했는 걸 새삼 깨달았다.


친구들의 한탄 섞인 얘기를 듣고, 아빠 일기를 훔쳐보면서 매일 밤 놀아달라는 아들에게, 퇴근한 아빠를 한 시간 반 동안 상대해준 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다 해도 부모 입장에서는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 말은 피곤한 부모의 쉼에 대한 갈구와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의 작은 오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고 생각했다. 렇다면 부모가 조금 더 노력하는 편이 현명한 방법 아까. 이런 의문이 꼬리잡기를 했다.


분명 가족보다 친구가 좋아지고, 부모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을 테고,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때가 머지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문을 닫고 들어가기 전까지, 수시로 쏟아내는 폭풍 수다와 어리광을 충분히 누려야겠다 다짐했다. 아이들 앞에서 한낱 피곤함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무 소중한 내 친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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