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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7. 2017

두 명의 아빠가 떠오른 어느 날

'한 명의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해'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며칠 전 예매하고, 당일 극장을 찾았다. 분명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지켜보는 앞에서 예매했는데, 되어 있지 않았다. 아, 이 무슨 날벼락. 그때부터 나는 죄인이었다. 아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이들과 쇼핑몰에서 게임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휴일 인파에 떠밀려 네 식구가 몰려다니는 게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었다. 아내도 은근슬쩍 이게 뭔 고생이냐는 듯 틈틈이 실눈 뜨고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 실망감을 잠재우고 돌아오는 차 안, 초등학교 1학년 둘째가 로봇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발견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신났던 아들. 분명 아빠 실수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듯한 투정이었다. "아빠 때문에 영화도 못 봤잖아요.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라며 연기를 시작했다.

 

그전부터 집에 많은 로봇이 있음과 이젠 로봇을 가지고 놀 나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 된다는 말을 명확하게 전한 바 있다. 그때는 아들도 수긍했다. 그런데 오늘 미안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기회로 삼은 거였다. 아빠만 보면 뭘 자꾸 사달라는 아이들, 일찍 퇴근해서 놀아주는 친구 아빠와 비교하는 아들, 아빠밖에 없는 듯 연기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엄마를 찾는 딸내미에 서운함을 종종 느낀다. 하지만 큰 의미 없는 아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사진 출처 : 영화 '부산(父山)'>

 

로봇은 절대 안 된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면서 불현듯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친구 같았던, 남 같았던 내 아빠.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항상 그 사랑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까지 친구처럼 지냈다. 방학이면 함께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쓰고, 만들기도 했다. 장난기 많은 아빠는 늘 나를 재미있게 해 줬다. 자주 놀러 다녔고, 중학교 때까지 산타할아버지 노릇 하느라 고생도 많았다. 자식을 위해 뭐든 다 해주고 싶어 했던 아빠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아빠와 멀어졌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는 게 불편했고, 출퇴근할 때 인사조차 제대로 안 했다. 이런저런 거짓말로 돈을 뜯어냈고, 갖고 싶은 걸 사달라고 당연하게 요구했다. 안 된다면 투정을 부렸고, 쓸데없는 고집에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식을 이기지 못했던 아빠였다. 그때는 아빠가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고생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서글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친구 같았던 아빠 그리고 남 같았던 아빠가 동시에 떠올랐다는 게 슬펐다. 더더욱 애통한 기분은 바로 '나는 아빠다'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내 아빠가 그랬던 거처럼 아이들과 친구처럼 함께 뛰놀면서 행복하게 지낸다. 아빠 한 마디에 까르르 웃고, 아빠가 너무 좋다며 불을 비비는 아이들과 살고 있다. 아빠의 서운한 한마디에 눈물 뚝뚝 흘리는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서서히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부록처럼 따라다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속담이 있듯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빠를 겪어본 아빠이기에 떠오르고, 상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빠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심리학을 공부하는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많은 아빠가 사춘기에 예민해지는 딸과 부딪히기 싫어해 서서히 멀어지고, 대드는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외면하게 된다고. 이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아빠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지금처럼 계속 노력해 달라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모든 걸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빠는 뭐든 잘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아빠의 단점이 보이면서 아빠의 비논리성과 부당하게 화를 내는 모습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이 또한 내가 느꼈던 감정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

 

아빠와 내가 그랬듯, 때를 놓치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도 이미 겪어봤다. 그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건 소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직장상사와 마찬가지로 자녀들과도 소통이 중요하다.

 

외로움을 자처하는 가부장적인 가장의 모습은 더 이상 아빠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가족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서 세대 간 이해를 바탕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 시대가 원하는 떳떳한 아빠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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