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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23. 2019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의 잔인한 유혹

'세상이 나에게 잠시 내어준 혹독함'


28살,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부재는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었다. 어머니도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관 중이던 아버지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 친구의 전화였다. 그분은 아버지 소식을 몰랐다. 장례식에 참석 못해 미안하다며 어머니께 만나자고 했다. 며칠 뒤 어머니는 평소 안면 있던 그분과 만나 식사를 하고 오셨다. 왠지 모르게 어머니는 그날 이후 더욱더 힘이 없어 보였다. 그저 아버지 부재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며칠 뒤 어머니가 회사에 있는 내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버지 친구 만난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 끓어 넘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어머니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아버지 친구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머니한테 '아버지도 안 계신데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 식사 후 다단계 회사로 어머니를 데려갔다. 물 한 방울, 돈 한 푼 허투루 쓴 적 없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카드로 1,000만 원을 긁어버렸다. 뒤늦게 후회한 어머니 홀로 고민과 사투를 벌이다 내게 얘기를 꺼낸 거였다.


'다단계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머릿속은 텅 빈 느낌이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남 이야기 인 줄만 알았다. 순간적인 화는 어머니를 향했지만, 분노 근원은 아버지 친구다.


전화를 걸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게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수십 분 동안 전화로 실랑이를 벌였다. 내가 가장이었기에 멈출 수도 지고 싶지도 않았다. 이성을 잃고 발악한 게 통했는지 카드를 취소해 주기로 했다.


어머니는 친구와 함께 카드를 취소하러 가셨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어머니 핸드폰이 연결되지 않았다. 어머니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찾아가려고 나서는데,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서는 자동으로 전화가 차단된다고 했다.


안심도 잠시. 갑자기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카드 취소는 안 해주고, 몇 시간 동안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까지 꼬시고 있었다. 나보고 딱 한번만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미지 출처 : 영화 '킹콩' 스틸 컷>


화를 안 낼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한바탕 쏟아붓고 카드 취소 확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주체할 수 없어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전화기가 박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신 폰이었다. 아니 칼라폰이 탐나 내가 일방적으로 뺏은 소중한 전화기였다. 서러움이 폭발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취소 영수증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왔다. 둘이 또 울었다. 막내아들이 힘들까 봐 뭐라도 해보려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함께 갔던 어머니 친구가 아버지 친구분 꼬임에 넘어가 2,000만 원을 긁었다. 어머니가 그걸 뜯어말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나중에 친구가 원망할까 봐 끝까지 애썼지만 소용없었다고. 그 일로 어머니 친구는 큰 손해를 봤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죄송스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세상은 냉정했다. 아버지와 채무관계에 있던 사람들도 얼마간은 내게 돈을 갚았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은 연락이 두절됐다. 세상은 이렇게 차가웠다. 아버지, 어머니의 품이 대단한 안식처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의 팀장이 그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그때는 '아버지 잃은 사람에게 할 소린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세상이 잠시 내어준 혹독함 덕분에 인생의 한 챕터를 배웠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차가운 시간은 세월이 흐르면서 흐려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15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아버지를 쏙 빼다 박은 아빠가 됐다. 토끼 같은 자식들과 다단계에 잠깐 몸 담았던 어머니와 행복한 일이 더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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