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드id Aug 23. 2019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의 잔인한 유혹

'세상이 나에게 잠시 내어준 혹독함'


28살,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가장의 부재는 막내인 내가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었다. 어머니도 막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 친구라다. 그런데 아버지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친구분은 어머니께 만나자고 했다. 어머니는 평소 안면이 있던 그분과 며칠 뒤 만났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날 이후 더욱더 힘이 없어 보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 같았지만 단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고 여기고 넘겼다.


  며칠 뒤 어머니가 회사로 전화를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버지 친구 만난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 넘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어머니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아버지 친구라는 작자는 식사를 한 후 어머니를 다단계 회사로 데려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머니한테 '아버지도 안 계신데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꼬신 거였다. 물 한 방울, 돈 한 푼 허투루 쓴 적 없는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카드로 1,000만 원을 긁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홀로 고민과 사투를 벌이다 내게 얘기를 꺼다.


  '다단계라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머릿속은 텅 빈 느낌이었다. 눈물만 쏟아졌다. 남 이야기 인 줄만 알았다. 순간적인 화는 어머니를 향했지만 근본적인 분노는 쓰레기 같은 아버지 친구를 향해 있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수십 분 동안 전화로 실랑이를 벌였다. 이성을 잃고 발악하는 내 초라한 모습이 통했는지 어머니가 직접 오시면 카드를 취소해 준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아 가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 가는 게 걱정돼 어머니 친구분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어머니 핸드폰이 연결되지 않았다. 어머니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찾아가려고 나서는데,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서는 자동으로 전화가 차단된다는 거였다.


  화도 났지만, 안심는 마음이 더 컸다. 안심도 잠시. 갑자기 아버지 친구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카드 취소는 안 해주고, 몇 시간 동안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까지 꼬시고 있었던 거다.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가 나한테 전화한 거였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킹콩' 스틸 컷>


  화를 안 낼 수가 없었다. 쌍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전화기가 박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신 폰이었다. 아니 칼라폰이 탐나 내가 일방적으로 뺏은 소중한 전화기였다. 서러움이 폭발해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취소 영수증을 가지고 돌아왔다. 둘이 또 울었다. 막내아들이 힘들까 봐 뭐라도 해보려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함께 갔던 어머니 친구가 그 인간 꼬임에 넘어가 2,000만 원을 긁었다는 거다. 어머니가 그걸 뜯어말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나중에 친구가 아들을 원망할까 봐 끝까지 애썼지만 소용없었다고. 그 일로 어머니 친구는 큰 손해를 봤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어머니와 친하게 지낸다. 내 마음 편에는 늘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다.    


  세상이 정말 소름 끼치게 살벌하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아버지와 채무관계에 있던 사람들도 얼마간은 나에게 돈을 갚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은  연락이 두절됐다.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이라 많은 것을 손해 봤다. 세상은 이렇게 차가운 곳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품에서 철없는 막내로 살다 보니 냉정한 세상을 몰랐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서러운 시절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려졌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도 조금은 무뎌졌다. 하지만 '저런 더럽고 비겁한 짓을 하는 어른은 되지 말자'라는 교훈 한 가지는 확실하게 가슴에 남았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 팀장이 그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아버지 잃은 사람에게 할 소린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15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아버지를 쏙 빼다 박은 아빠가 됐다. 토끼 같은 자식들과 다단계에 잠깐 몸 담았던 어머니와 행복한 일이 더 많다.


  세상이 나에게 잠시 내어준 혹독함이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다. 힘든 날이 있으면 행복한 날도 있는 게 인생이다. 섣불리 좌절하지 않는 지혜를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선배 변덕에 얼룩진 나의 첫 직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