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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11. 2019

명절 아침, 아빠는 대성통곡하는 나를 끌고 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았다'


어느덧 또 추석이다. 명절은 잘도 돌아온다. 그만큼 세월이 빠르다는 거겠지. 감사하게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겠지. 도돌이표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에 한숨짓는 일이 다반사다. 한심한 내 모습과 더불어 명절이 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명절 아침을 지독하게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침울하고 아쉽고 아련한 복합적인 감정이랄까.


부모님은 형제가 별로 없다. 고모는 어릴 적에 돌아가셨고, 아빠의 유일한 핏줄인 작은 아는 미국에 살았다. 엄마도 남매인데, 외삼촌은 사업 때문에 외국에 머물렀다. 명절에는 조촐하게 우리 네 식구(부모님, 누나, 나)끼리만 명절을 보냈다. 명절에 집은 늘 고요하고 한가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치러야 할 과제가 있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빠가 시작한 반강제적인 등산이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명절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산에 가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호연지기를 만끽하자."


아빠의 그럴듯한 명분. 차례만 끝나면 온 가족이 산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산에 다녔다. 누나랑 나는 너무 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대성통곡을 하며 끌려가기도 했다. 입을 최대한 쭉 내밀고 따라나서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참석 여부에 대한 자율권을 획득했다. 엄마도 가기 싫으면 불참. 아빠는 나만 끌고 산으로 향했다. 덕분에 영광스럽게도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도 산에 가기 싫어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당근(용돈, 장난감, 옷 등)으로 나를 이끌었다.


고3이 됐는데도 아빠와의 명절 등산은 계속됐다.


"하루 공부 안 해도 대학 가는 데 아무 지장 없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누나는요?'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끌려다녔다. 고등학생 때는 머리가 좀 컸다고 인상을 박박 쓰면서 따라나다. 일종의 반항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다지 통하진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은 잘도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고,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이듬해 설 연휴에 운 좋게 특박을 나왔다. 집에 미리 얘기 안 하고 아침에 '짠'하고 나타났다. 차례를 끝내고 아빠랑 누나랑 산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번에는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한 소중한 시간. 아마 이때가 셋이 함께한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산에서 내려올 때 아빠가 말했다.


"나는 이제 늙어서 몇 년 지나면 산에 가고 싶어도 못 가. 아빠 건강할 때 잘 따라다녀라."



사진을 보니 아들보다 훨씬 크던 젊은 아빠는 세월에 치여 아들보다 작아져 버렸다.


흘리듯 들었던 아빠 말은 결국 몇 년 뒤 현실이 됐다. 아빠가 늙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함께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명절 아침, 어릴 적에는 산에 가기 싫어 울었는데, 다 커서는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라 울컥하곤 한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기분 좋게 아빠를 따라나서지 않았을까. 후회스럽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효도라는 게 참 얄궂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깨닫지 못한다. 아빠 이렇게 쉽게 가족을 떠날 줄 정말 몰랐다. 이런 일을 겪었음에도 엄마에게 나머지 효도를 못 하며 다. 최근 엄마가 원인 모를 다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엄마랑 여행 같이 간 게 언제지? 엄마 나으면 같이 여행 가자."


누나가 말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다. 엄마와의 여행,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니까 급해졌다. 자식들이 이렇다.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엄마는 몸이 아프고 나이가 들었다. 아빠 때처럼 속상하고 죄송하다.


다시 본론. 그래도 난 아빠의 특훈 덕분에 산을 아주 잘 탄다. 이제 내 아빠는 세상에 없지만, 내가 아빠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점점 작아지는 엄마와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됐다. 이제 엄마한테 효도하고, 아이들과 함께 산을 탈 때가 도래했다. 


잊지 말자.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고, 아이들은 금세 자라고, 부모님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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