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을 싫어한다. 하지만 업무 차 종종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보니 불필요한 신규 가입자 알람이 멋대로 울리곤 한다. 어느 오후 평소처럼 불필요한 알람이 울렸다.
XXX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전혀 불필요하지 않은 알람이었다. 낯설면서도 반가운 고등학교 동창 이름이 보였다.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까맣게 잊었던 추억의 친구였다. 얼마나 연락을 두절하고 살았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눈 다음으로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XX? 맞아?"
"어?어? 장X이야?"
낯선 물음에 친근하게 반응했다. 짧은 순간 친구는 폭풍질문을 쏟아냈다.
"잘 지내?"
"자식은?"
"어디 살아?"
"결혼식 못 가서 정말 미안하다."
'내가 청첩장은 보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세월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최소 15년 이상은 연락두절이었다는 걸 알았다. 친구는 낯익은 친구들 이름을 대면서 "지금 XX, XX랑 카톡하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친구는 여전히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연락하고 만나는 중고등학교 친구가 거의 없다. 잠깐이나마 친구들 얘기를 나누니 즐겁고도 낭만적이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더불어 '수십 년이 흘렀지만 어릴 때 친구는 이렇게 편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에게 낯선 텔레그램에서 카톡으로 옮겨 잠시 달뜬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011-로 저장된 내 번호를 010-으로 바꾸고 나서 싱그러운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기분 좋다. 연락해줘서. 장X이한테 연락 왔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이제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친구 마음은 고교시절 그대로였다. 날 여전히 좋은 친구로 대했다. 일상에 치여 사느라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잊고 살았다. 결혼하고 살던 동네를 떠나면서 서서히 이런저런 만남이 줄었다. '저마다 처한 생활에 익숙하게 살겠지'라는 생각 아래로 친구들과의 추억과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렇지만 시간의 장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순수한 시절에 맺은 관계의 힘이었다.
'내 연락을 이렇게 반가워하다니' 퇴근길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친구에게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아 행복했다. 내친김에 전화를 걸었다. 십 수년 시간은 무시한 채 그간의 안부를 육성으로 주고받았다. 그리고 대뜸 만나자고 했다. 친구와 연락이 닿는 동창들과 날을 정하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인생에서 우정을 없애는 것은 하늘에서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우정이라는 건 쉬워 보이지만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묵은 친구들을 만나 철 모르고 멋모르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 이래저래 힘든 순간을 잠시나마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