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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30. 2019

22년 만에 열린 판도라 상자

'과거에도 현재에도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s://dangjin2618.tistory.com/m/13408>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일기장이나 오래된 편지를 들춰 볼 때마다 저도 모르던 제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깜짝 놀라곤 합니다. 결혼할 때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일기장 한 권과 빛바랜 A4용지 몇 장을 어머니께서 전해 주셨어요. 반짝반짝 빛나던 21살의 낯선 제가 들어 있는 너덜너덜한 종이. 그 종이 위에서 저는 '어린'과 '어른'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 12월, 눈 오는 아침 이야기입니다.


  낭만과 동심의 상징인 눈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어린이 기준은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사회의 쓴맛을 못 본, 세상과의 타협을 모르는 순수함을 지닌 모든 이 '어린'이 칭하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어린'이라는 세상에 살고 싶으니까요.


  인생을 깊이 알아 가는 게 왠지 두렵고, 모순덩어리라고 여기는 세상에 속하는 게 싫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서서히 변하는 저를 느낍니다. 나만의 '어린' 세상 속 순수한 생각은 무의미함을 머금은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한 발 두 발 잿빛 세상에 발 들여놓으며, 자연스럽게 두려워하고 꺼리던 곳에 속해 있는 기분.


  오늘 아침, 늘 낭만적으로 대하던 눈을 보고 느낀 감정이 심하게 삐뚤어진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겨울까지 눈은 제게 즐거움과 순수함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였어요. 만지고 싶고, 뭉치고 싶은 마음 가득한. 그런데 오늘 아침 마주한 눈은 악마 같았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어진 마음으로 악마를 보았. 세상을 희뿌옇게 둔갑시킨 눈은 이제는 제 눈도 마음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아! 언제 다 쓸어! 차라리 비나 오지. 또 며칠 질퍽거리겠구먼…"이란 말을 내뱉고 있었.


  눈에 지친 하루를 보내니, 문득 '어린'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지는 대신 차 버리고 싶었고, 무한 반복되는 비질로 등줄기로 땀이 흐를 땐 눈에 대한 분노까지 느꼈어요. 눈이 쌓일수록 마음속에는 짜증과 불만이 쌓습니다.


  '아, 어쩌다 내가 이렇게 메말라 버렸을까?'


  잠시 하늘을 올려보며 눈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여유조차 박탈당했다는 생각에 서글퍼졌습니다. 급격하게 세상을, 어른을 닮아 가는 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저를 둘러싸고 있는, 내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세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군 생활 시작한 지 어느덧 7개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티고 있지만, 항상 쫓기는 듯한 불안함, 숨 막히는 사방의 창살은 피할 수 없는 공포입니다. 덕분에 작은 여유도 느끼지 못하고 검은 마음만 머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잘도 흐르고 있습니다. 아마 세상이, 제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이겠죠.


  제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게 성장하는 과정일 테니까요.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속 구절. 새가 알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듯 사람도 다른 세계로 통하는 껍질을 부숴야 상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겠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어린' 세계를 군대에서 깨는 중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좁아터진 알에서 나와 조금 더 멀리 바라본다면 머지않아 또다시 하얀 눈을 보며 미소 지을 만큼의 작은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1997년 12월 일경 장 XX



  22년 전 '어린' 마음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던 순수했던(?) 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시로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잃어버리는 것' 보다는 '새로 느끼는(만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야 거친 세상을 무리 없이 헤쳐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에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꽃다운 21살도 힘든 순간, 괴로운 마음을 피할 수 없었고, 지금은 또 다른 어려움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똑같은 저 하나를 분리해, 두 세대를 공감하며 생각해 봅니다.


  항상 앞만 바라보며 내달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쏟아지는 눈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돈 안 드는 호사, 잠시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행복한 여유가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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