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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01. 2021

직장에서 네 길, 내 길 구분하기

'세상 누구에게도 똑같은 상황은 없다'


자극과 실천은 개개인의 취사선택이다.
강요로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


10년 다니면 직장을 그만둘 줄 알았다. 2006년에 떠올렸던 생각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직장인이다.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지만 직장인 굴레에 자연스레 갇혔다.


장기간 직장생활을 한 곳에서만 하면 잡생각의 물꼬가 여러 갈래로 트인다.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도 무수히 많지만, 고이고 고인 물이 양산하는 악취나 부작용을 쉽게 목격하기도 한다.


많고 많은 부작용 중 하나가 뒤틀린 리더십이다. 조직에서는 성공한 자, 보통인 자, 실패한 자 등 보이지 않는 등급을 나눈다. 능력일 수도, 인사평가일 수도, 평판일 수도, 단순하게 운이나 말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직장에서의 성공은 대부분 더는 올라갈 곳이 없을 만큼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로 종결된다.


한 곳에서 한 우물만 파던 리더의 성공은 여기저기 불편한 궤적을 새기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이 될 확률이 1%도 안 된다고 하니 분명! 성공이 맞다. 바늘구멍을 통과하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고난이 있었을 터. 그 무게를 오롯이 느끼면서 견뎠을 테니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린 탓일까.


간혹 성공자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비슷비슷한 오류를 범하곤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정답! 이야'라는 오답을 맹신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하직원에게 철 지난 자기 생각과 사상을 주입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외침일까.


"쓸데없이 후배들하고 어울리지 말고, 팀장이나 임원들하고 자꾸 자리를 만들어서 눈에 띄어! 그래야 어디든 자리 났을 때 너를 떠올릴 수 있거든.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자리에 꽂아줄 수 있겠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끄덕끄덕 공감 하기도, 절레절레 기겁하기도 한다. 권력을 향한 열이 넘치는 사람에게 상사의 말은 정답이 된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누군가에는 불필요한 조언이자, 충언을 가장한 언어폭력일 수 있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자꾸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만드는 불협화음은 직장생활을 지옥으로 만다. '나처럼 해! 내가 곧 길이고 답이거든'이라는 착각에 빠진 상사와 일하는 직원의 의욕은 생명력을 잃는다.


원래도 고집이 없지만, 후배들 주장을 듣고 나와 의견이 달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수긍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청은 반복하면 할수록 편협한 생각에 깊이를 선사한다는 걸 깨달았다. 답이 없는데, 답을 외치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나 역시 내 생각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끊임없 고민한다.


영화 <블랙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완벽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파괴한다.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삶을 살지 마"라는 영화 속 대사가 우리의 삶을 대변해 준다.


더 멀리 보면 세상에,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성공한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누군가의 스토리를 보고 들으면서 희망의 싹을 키운다. 하지만 세상 누구에게도 똑같은 상황은 없다. 그저 마음으로 용기와 위로를 얻 뿐이다. 자극과 실천은 개개인의 취사선택이다. 강요로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다. "쟤 좀 봐! 저렇게 공부해야지 성공해!"라는 말이 자식에게 무용지물이듯 직장에서 성공 열쇠에 대한 누군가의 일장연설 소음일 뿐이다. 든 내 마음이 기쁜 게 우선이다.  자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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