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놀란 수십 년 전 아빠의 일기
"딸과 친구가 돼 함께 떠난 과거 여행"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일기장을 모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일기를 썼지만 상당수 사라지고 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시절, 군대에 있을 때 등 총 10권의 일기장이 남아 있었다. 가끔 들춰보던 먼지 냄새 풍기는 일기장을 딸아이와 함께 읽었다. 중학교 1학년 딸내미는 자기 나이쯤의 아빠를 상상하며 일기장에 푹 빠져들었다.
초등학생 때 맞춤법도 틀리고 엉성했던 일기장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환골탈태했다.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여자 친구들의 예쁘고 단정하면서도 독특한 글씨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받은 편지와 같은 서체로 답장을 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래서 영락없고도 다양한 여성 글씨체를 손에 넣게 되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서기를 맡기도 했다.
일기장에는 알록달록 글씨체부터 왼손 글씨를 비롯해 딸내미가 "주변에서 이런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왼손 글씨를 이렇게 잘 써요?"라며 놀랄만한 글씨체가 가득했다. 왼손 글씨는 오른쪽 뇌 활성화 차원에서 시작했다.
딸내미는 아빠 어린 시절 글씨체를 촬영해 연습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긍정적인 대물림 효과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글씨체는 비슷하다.
학창 시절 여성스러운 글씨체가 창피한 적도 있었지만, 미래에 딸아이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일기 내용은 참 가관이었다. 늘 자연스럽게 강조했던 '아빠, 학창 시절 모범생!' 어필이 무색할 만큼 놀았다는 내용만 가득했다.
여자애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고 또 놀았다는 일기가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또박또박 언급된 친구들 이름을 보니 철 모르게 뛰놀던 학창 시절 내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허구한 날 놀면서도 '공부해야 되는데 또 놀았다', '시험을 또 망쳤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하자!'라는 안쓰러운 다짐이 반복해서 따라다녔다.
"아... 아빠가 맨날 놀면서 공부 걱정을 많이 했네. 그리고 아... 아마 시... 시험 잘 봤는데 공부한 거에 비해 망쳐... 쳤다는 걸걸?"
그래도 일기 사랑은 한결같았다. "공부하기 싫다. 일기나 써야겠다"라는 말이 중고등학생 때 일기장에 자주 등장했다. 자율학습 시간에 일기장에 시를 쓰고, 편지를 쓰고, 엉뚱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일기를 읽고 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일기를 펼쳤다. 초반부터 술 마신 이야기가 등장했다. 후다닥 덮었다.
"딸, 고등학생 되면 그때 고등학생 때 일기 보여줄게."
'첫 술을 마시고 얼굴이 미친 듯이 빨개지는 체질인 걸 처음 알았고, 집에 들어오니 놀란 아빠가 몽둥이를 찾아온 이야기'였다.
고2 때는 통째로 술집을 빌려 친구들과 밤새 놀기고 했다. 내가 한 짓에 나도 놀랐다. 어리숙한 일탈이자, 추억이지만 딸아이에게는 아직 들킬 수 없다. 술은 못 마시는 체질인 걸 진작에 깨닫고 마시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주스를 시켜 놓고 밉상 역할을 담당했던 추억도 있다.
부녀의 일기 탐독은 한참 이어졌다. 다행히도 결론은 훈훈했다. 내 과거의 부끄러움과 소박함이 낳은 긍정적인 효과랄까. "개학이 내일인데 밤을 새도 방학숙제를 다 못하겠다"라는 중학생 아빠의 일기에 딸아이와의 무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나중에 커서 읽으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오늘부터 일기 쓸래요"
딸아이는 당장 일기장을 펼쳤다. 아이들 일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가족 교환 일기를 쓰고,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일기를 쓰라고 닦달해도 소용없더니, 역시 모범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었다.
요즘 내 일기장은 브런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간직하기 위해, 혼자 보기 위해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적는다. 과거의 습작과 습관이 현재의 나와 글로 재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빠가 왜 그렇게 일기에 집착했는지 이제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억지로 일기를 쓰던 내가 아빠의 강요 없이도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기를 쓰고 있다. 기특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기를 써온 준비된 작가?라는 누나의 덕담에 마음을 끄덕였다.
아주 오래오래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