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내 편이 생기는 글쓰기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말자'
브런치 입문 후 처음에는 직장인 자기계발 관련 글만 썼다. 덕분에 책을 몇 권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얼굴이 달아오름을 수차례 느꼈다. 과감하게 글 쓰는 성향은 아니다. 단지 모든 걸 통달한 듯 '이래라저래라'하는 문장들이 날카롭고 위태로워 거슬렸다.
누구도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레 일상의 감성과 열린 결말을 담는 에세이로 눈을 돌렸다. 에세이도 조심스러웠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는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올라서다. 여러 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갈피를 잡았다.
에세이를 쓰는 덕분에 소중한 독자가 한 명 생겼다. 중학생 딸아이가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 내가 쓴 글과 책을 읽는다. 머리가 커감과 동시에 마음도 깊어지는 탓인지 글을 읽고 "재미있었어요", "슬펐어요"라는 소감도 종종 전한다. 아들도 가끔 내 브런치 글을 본다. "주제가 뭐 같아?", "어떤 생각이 들었어?" 등의 질문을 던지며 주제 찾기 놀이를 한다.
언제부턴가 아이들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글의 모티브는 '바른 글쓰기'다. 한마디로 긍정적인 마음을 담는 글이다.
글을 쓰면 기분이 좋다. 하얀 화면을 순식간에 늘어난 활자가 채우는 광경이 신기하다.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몰입하는 시간이다. 내가 겪은 더러운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바라보는 기회는 덤이다. 이런 긍정적인 느낌을 글에 녹인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의 마음을 담아 마무리한다'가 요지다.
그렇다고 모든 걸 참아내며 악감정도 꾸역꾸역 끌어안고 산다는 말은 아니다. 과장된 감정을 빼고 덤덤하게 상황을 적어 내려간다. 감정에 젖어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진짜 짜증 났다", "너무 억울하다", "울트라 캡숑으로 분하다", "킹왕짱 어이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슬펐다" 등은 주관이 듬뿍 담긴 표현이다.
본인 기분에 취해 울면서 쓴 글에 독자는 눈물 흘리지 않는 법이다. 기분을 절제하며 제삼자 입장에서 나를 보듯 담담하게 털어놓으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웃어라, 모든 사람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대사다. 모두 함께 웃을 수는 없어도 잔잔한 미소라도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글을 쓰면 함께 웃고 울어주는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편'의 의미는 댓글이다. 내 마음과 꼭 닮은 댓글들이 주렁주렁 열리면 기분 좋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내편이라는 동질감 때문이다.
절제한 감정을 댓글이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놓친 무언가를 채워줄 때도 많다. 단 하나의 댓글이라도 좋다. 공감이자 위로이자 응원이다. 열린 마음 함께하는 즐거움이다. 댓글로 비로소 한 편의 소중한 글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