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더러운 꼴을 많이 당한다. 부당하고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 경우도 있고, '더럽고 치사해 때려치운다'라는 다짐도 수시로 한다. 불의를 보고 외면해야 할 때도 있고, 순간의 감정에 취해 회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직장인이 참고 견딘다. 그렇다고 이런 성향이 직장생활에 적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저마다 성격과 처한 환경이 다르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달아 험난한 하루하루 헤쳐나갈 뿐이다. 뜻한 바가 확고해 묵묵히 견디는 이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오늘내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직장인의 삶. 내 아빠도 직장인이었다. 잠깐이지만,치열한 직장인 부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위안이 됐다.
자라면서 아빠는 남 밑에서 일을 못 하는 성격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었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직장인 체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회사에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던 모습은 어렴풋하다. 사업을 하거나 힘겹게 장사했던 모습만 짙게 남아있다. 아빠는 성격 핑계로 직장을 진득하게 다니지 못했다고만 여겼다. 철없이 회사를 쉽게 때려치우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일기장을 들춰보다 난데없는 문장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간 느꼈던 섣부른 감정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빠와 외모, 성격 등 많은 부분 닮았다. 큰 차이라고 하면 아빠는 늘 신념이 확고했고, 작은 체구에도 강인함이 있었다. 나와는 반대다. 아빠는 사회생활에서도 신념과 깡을유감없이 발휘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K장남으로 버티면서 생긴 근성일지도 모르겠다.
1974년 12월 17일(陰 11월 4일) 화. 23시경 눈 조금
(중략) 아빠는 아까 12시가 넘도록 뭘 했는가? 했는데 우리 회사 사장 아들을 만나 술을 먹느라고 그렇게 늦었단다. 혹시 네게 더 돈이 필요하게 될지 몰라 50,000원을 가불 했는데 그걸 찾으려고 본사에 갔더니 사장 아들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지금 아빠 회사 사정을 얘기하자면 너무 장황하게 될 테라 다음 기회 나는 대로 얘기하겠고. 오늘 아빠는 사장 아들과 헤어져 나오면서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자식을 낳고 보니 이제 매사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더구나."
아빠는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서 언제든지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해 왔는데 이제부터 그런 맘을 갖지 말고 어떻게든지 회사에 붙어 생활의 안정을 가하고 장래를 예비해야겠다는 뜻의 말이었다.
사장 아들을 만났을 때 아빠는 되도록 신용을 얻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장 아들을 상대했는데 이게 모두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의 아빠는 내 이해타산보다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거침없이 뱉어 버리는 그런 태도였단다.
이만 해도 아빠는 너 슬기를 위해야겠다는 생각에 벌써 이렇게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데 앞으로 엄마의 불만을 충분히 없애줄 수 있을 것이다. 슬기야!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내 맘속이 여의하게 표현되지 않는구나. 아마 사장 아들과의 심리 담소 신경이 너무 피로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안녕.(18일 01:15분)
대쪽 같던 아빠의 신념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누나가 태어나 부모가 되고 나서다. 아빠가 되고 비로소 현실을 직시했다.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눈에 밟혔을까. 간호 공무원이었던 엄마도 아빠의 자신만만함에 직장을 그만뒀다. 친척 형에게 아빠가 신혼 초에 지금도 건재한 철강회사에 다녔다고 들었다. "회사만 진득하게 잘 다녔어도 아빠 인생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몰라"라는 대화를 최근에 누나와 나눈 적 있다. 고생만 하다 떠난 아빠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사장 아들을 만났을 때 아빠는 되도록 신용을 얻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장 아들을 상대했는데 이게 모두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의 아빠는 내 이해타산보다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거침없이 뱉어 버리는 그런 태도였단다"
아빠를 잘 알기에 아빠의 다짐이 뭉클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빠는 회사의 비리와 부당함에 맞서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로 아빠는 더 이상 직장을 찾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험난한 인생이 시작됐다. 반듯한 직장 하나 없던 아빠, 고생길을 스스로 개척한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능력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외면하고 살 수 없어 내린 결단이었다. 그 덕에 아빠는 평생 고생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아빠 살아생전 소싯적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회사의 비리를 차마 눈감을 수 없었다는 말만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아빠는 힘겨운당장의 삶에만 충실했다. 후회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술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시는 아빠가 사장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 안쓰럽고 짠하다. 고민하고 다짐한 흔적을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 사장 아들과의 심리 담소 피로도가 컸다는 말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 뒤로 몇 년 버티지 못했을지라도 아빠가 노력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소신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까.
"그전의 아빠는 내 이해타산보다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거침없이 뱉어 버리는 그런 태도였단다."
거침없던 젊은 시절의 아빠가 새삼 멋지고 부러웠다. 내가 물려받지 못한 유전자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고개 숙이고 사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도 나처럼, 모든 직장인처럼 직장생활에 불만을 가지고도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커다란 위안이 된다.취업을 하자마자 아빠가 돌아가셔서 사회생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못내 아쉽다. 아빠이자, 직장인 선배이자, 인생 대선배에게 배울 점이 많았을 텐데 그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
아빠가 떠난 지 어언 20여 년이다. 무뎌질 만큼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빠를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아빠가 돼 살다 보니 아빠의 고생을 외면했던 순간순간이 떠올라 너무 죄송하다. 곁에서 든든한 아들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반면 아빠는 평생 아들에게 교훈을 전해줄 것 같은 고마운 예감이 든다.
후회하는 내게 누나가 그랬다. "직장도 열심히 다니고 책도 쓰고, 아빠가 니 모습 보면 많이 좋아했을 거야."라고. 아빠 납골당에 책이 나올 때마다 넣어드렸다. 아빠처럼 굳은 심지로 소신 있게 살아가지는 못 하지만 아빠가 이루지 못한 직장생활을 열심히 버티고 있고, 아빠의 꿈이었던 작가도 됐다. 어쩌면 아빠도 아빠가 겪지 못한 물렁물렁한 내 삶을 대견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 마주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아빠들의 삶이 그들의 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떠올려 본다.그리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