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반세기 전 흔적을 워드 파일에 옮기는 중이다. 48년 전 누나가 태어난 날부터 아빠는 약 1135일 동안 틈틈이 육아 일기를 썼다. 일기장은 2003년 가족을 떠난 아빠의 유일한 유품이다. 수많은 글과 노트, 원고지를 남겼지만 가족의 무심함에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노트에 남은 글은 육아 일기이자 미래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워드 파일에 다 옮겨 적으면 1,000장이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대하소설을 읽듯 차근차근 넘기는 중이다. 일기장을 오래 들여다볼 수 없어서다. 50여 년 세월을 견뎠으니 조금만 만져도 모서리는 바스러지고 종이 먼지가 날려 눈이 금세 뻑뻑해진다. (누나 태어난 지 925일째 되는 날 내가 태어났다. 꼽사리로 내 얘기도 210일간 등장한다. 물론 조연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 내 첫 이름이 '장순빈'이었다는 놀라운 진실 같은?)
누나가 태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의 일기에 아빠는 아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적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 딸을 낳은 서운함을 감추려는 의도인가?'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사정이 숨어있었다. 아빠는 자신의 대가 이어지는 것이 싫다고 했다. 평소 낭비벽이 심하고 금전적 계획 없이 사는 삶의 기질을 아들이 물려받을까 봐 겁이 난다는 이유에서다. 고작 35살의 아빠가 감당했던 무게가 그렇게 컸던 걸까.
아빠는 낭비벽 때문에 결혼도 늦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아빠에 대한 엄마의 가장 큰 불만도 계획 없는 낭비벽이라 적혀있다. "나를 닮은 아들이면 또 필연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이라 내 대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라며 젊은 아빠는일기장에 확고한 의지를 새겼다.
아빠에게 학창 시절부터 '용돈을 계획성 있게 써라, 용돈 기입장을 써라, 연애할 때 너무 물질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빠의 조바심이었을까. 뭐가 있어야 쓰는 것이지만 자신의 처지보다, 능력보다 많이 쓰면 그게 낭비벽이자 계획 없는 소비다.
고난한 세월이 아빠를 바꿔 놓았을까. 누나랑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책임감 있고 생활력도 강했다. 낭비벽이랑 무계획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책 한 권을 사러 헌책방을 전전할 만큼 돈 한 푼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맥가이버 버금가는 손재주로 많은 것을 재활용해 사용했다. 마지막까지 처자식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린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최근 떠난 엄마 때문에 슬퍼하느라 아빠에게 소홀했다. 문득 아빠가 떠올라 일기장을 펼쳤다. 아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곱씹을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빠가 젊었을 때 엄마한테 들었던 말을 나도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도 아끼던 엄마는 절약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젊은 시절의 아빠를 떠올렸을까.
1974년 12월 17일(陰 11월 4일) 화. 23시경 눈 조금
(중략) 아들을 원하는 게 부모들의 상정이라는 게 틀림이 없지만, 아빠는 네가 잉태됐을 때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이것은 아빠의 진심이었다. 아들을 낳으면 또 내 대가 이어지게 되는데 아빠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어제도 아빠는 아빠가 못난 사람이라 했는데 정말 아빠는 생활인으로서의 아빠를 못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와 같은 역사가 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사회에 대한 마이너스이며 또 나로 인해 내 자식이라는 명색의 한 인간이 얄궂은 불행을 겪어야 되겠기에 아빠는 차라리 내 대는 나에게서 끝나버리면 인간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며 딸을 낳아 정성껏 길러 가지고 좋은데 시집보내면 그 한 사람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이바지될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아들 말고 딸을 원했던 것이다.
(중략) 엄마는 이 아빠에게 항상 커다란 불만이 있단다. 낭비벽이 심하고 계획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정확한 사실이란다. 아빠는 그 때문에 생활에 뒤늦었고 그런 단점을 고쳐 갖지 못할 내가 바보라 했고 나를 닮은 아들이면 또 필연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이라 내 대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중략)
48년 전 아빠의 대물림 예언이 정확하지는 않다. 틀리지도 않았다. 아빠의 우려, 낭비벽, 무계획, 자책. 낭비벽까지는 아니지만 아껴 쓰지 않는다.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저축한 돈도 별로 없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고민은 하지만 결국은 사들인다. 엄마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선물이랍시고 자꾸 떠 안겼다. 엄마가 선물을 받아도 기분이 좋지 않다고, 진심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제발 돈 좀 아끼라고. 가전제품을 바꿔드려도 엄마에게는 낭비일 뿐이었다. 누나가 이사 간 집을 한번 둘러보고 와서 이것저것 보냈다. 엄마처럼 알뜰살뜰한 누나도 필요 없는 걸 왜 자꾸 사냐고 진심 어린 잔소리를 한다. 친구들 단톡방에 기프티콘 이벤트를 남발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 먼저 계산하는 걸 선호한다. 선물하는 것도 좋아한다. 플렉스는 아니지만 소비의 폭이 넓다. 저축과 절약이 몸에벤 엄마에게 부자父子의 소비는 낭비였다.
그런데 세월을 돌이켜 보니 다시금 아빠의 삶이 보였다. 아빠가 자책한 낭비벽은 과도한 베풂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낭비와는 다른 유형의 소비다. 장남의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낭비벽이란 말도 아빠의 자책을 담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없는 형편에 더 없이 사는 형제를 과하게 도왔고, 없이 살면서도 조카들 용돈을 꼬박꼬박 챙겼다. 믿었던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가 뒤집어쓰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적도 많다.
아빠의 과거를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엄마의 불만도 이해가 된다. 악착같이 아끼던 엄마의 심정, 여기저기 나누고 싶은 아빠의 마음. 아빠는 늘 형편보다 과분하게 누군가를 도왔다. 이런 기질을 아들이 대물림할까 봐 걱정했던 것일까.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28년 간 함께 산 아빠를 떠올리며 내린 해석이다.
엄마가 계셨다면 아빠의 젊은 시절 '낭비벽사건'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봐 답을 얻었을 텐데 아쉽다. 이제는 아빠의 일기장 내용을 토대로 반세기의 과거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엄마의 불만, 아빠의 지나친 걱정과 섣부른 예언이 가슴에 들어와 앉았다. 내 삶을 곱씹어 보니 아빠처럼 모질지 못해 굵직한 손해도 꽤 보면서 살았다. 아빠의 예언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다. 그렇지만 내 아들이 물려받는 게 걱정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잘 살고 있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 아빠의 바람을 가슴에 새긴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엄마의 불만, 아빠의 우려는 조금 과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두 분 마음이 모두 진심이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엄마의 알뜰살뜰 절약 덕분에 가족이 잘 살았고, 아빠의 베풂 덕에 마음에 따듯함을 심으며 자랐다. 고맙고 또 고맙다. 먼 길을 떠난 후에도 이렇게 의미심장한 잔소리를 남겨준 엄마, 아빠라서. 나 역시 베푸는 삶 속에서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글의 힘을 사랑한다. 덕분에 세상에 없는 엄마, 아빠를 계속해서 부를 수 있다. 행복하다. 아빠가 반세기 전에 남긴 일기장은 여전히 자식들과 소통 중이다. 누나도 나도 35살의 아빠를 만날 수 있어 마음이 따듯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아빠.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싶다. 그 나이 때는 다 그런 거라고. 젊은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십여 년 전 떠났지만, 여전히 아빠는 가까이 머물러 있다. 글을 쓰고 남기고 공유한다는 것, 생각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리고 남겨진 글을 읽는 사람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