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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여 만에 눈치챈 낯선 뭉클함

"소중한 사람과의 귀중한 기억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by 이드id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테레오 오디오를 선물 받았을 때,
빙 크로즈비의 크리스마스 캐럴 레코드가 함께 딸려왔다.
그런 걸 보면 크리스마스 즈음의 계절이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 등장하는 '크리스마스'라는 글 첫머리에 나오는 문구다. 오디오와 선물 그리고 크리스마스. 복잡한 머릿속 소소한 기억의 고리가 산타클로스를 소환했다. 어서 30여 년 전 아빠까지 불러들였다. 엄마보다 덜 애틋했던 아빠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엄마보다 섬세했다. 유리알을 다루듯 누나와 나를 챙겼다.


중학교 때까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았다. 내가 중학생이면 누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때만 해도 이유불문, 당연한 선물이라고 여겼다. 종류도 다양했다. 실로폰, 멜로디언, 황금색 포함 48색 크레파스, 라디오, 손목시계, 장난감, 과자 등등. 부록으로 늘 꽉꽉 채워 자필로 쓴 산타할아버지의 카드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속상하게도 남아 있는 카드가 없다. 선물도 다 기억나지 않는다. 놀라운 건 누나가 아직도 30년 전 타가 준 손목시계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쿠팡도 없던 시절, 직접 시간을 내 선물을 고르고, 모두 잠든 시간에 자식에게 편지를 쓰는 아빠를 떠올리면 새삼 뭉클하다. 그렇지만 아빠에게는 분명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마음만은 늘 풍성한 산타 아빠의 선물. 12월 24일이면 항상 설렜다. 일찍 잠을 청했고 아침이면 늘 행복했다. 하지만 까치발로 머리맡에 선물을 배달하던 아빠의 마음을 헤아린 적은 없다.


이젠 내가 자연스레 내 아빠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 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가끔 서운할 때도 있다.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기대보다 반응이 덜 할 때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아빠, 엄마에게 선물을 받고 고마워한 기억이 별로 없다. 무언가를 사주지 않으면 늘 심통을 부린 일만 기억날 뿐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바쁘고 빠듯한 인생을 살던 아빠. 늦게까지 일하고 보금자리로 돌아와도 따듯하게 반겨주는 이 하나 없던 날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빠가 출근하는데 내다보지도 않는다고 혼난 적 있다. 아빠는 대접받으려는 게 아니라 예절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누나와 내가 잘못을 저질러(대부분 연대 책임이었다) 회초리를 들 때도 잘못만 알면 된다며 종아리에 신문지를 대고 매질을 하거나, 옷 위에 회초리를 댔다. 당연히 아프지 않았다. 아픈 연기를 하다 누나랑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진 적도 있다. 아빠의 배려이자 사랑이었다.


오늘처럼 아주 사소한 일, 사소한 단어 하나 덕분에 한참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 종종 있다. 어쩌면 이런 소소함이 각박한 삶을 소중하게 지탱해 주는 보물 아닐까. 아빠가 떠난 지 17년이 지났지만, 철없던 아들은 여전히 아빠 마음을 모두 헤아리지는 못한다. 늘도 하루하루 알아갈 뿐이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점점 나빠지더라도 소중한 사람과의 귀중한 기억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내 아빠가 충실히 수행한 아빠 배역을 더욱더 멋지게 소화해 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자식을 대하는 아빠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아이들 생일에만 짤막한 손카드를 써준다. 아이들은 귀엽게도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클로스를 벗고 아빠가 듬뿍 담긴 이색 손카드와 기억에 오래 남을 선물을 남겨야겠다. 아이들이 35년 뒤에도 추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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