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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09. 2022

매일 아침 볼펜으로 인격 수양을 합니다

"지겨운 회의 시간이 글씨 연습 시간이 되었습니다"


매일 오전 팀 회의를 한다. 일일 회의 외에도 다양한 회의의 향연이 매일 펼쳐진다. 상반기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다이어리 두 권을 다 썼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인 듯싶다. 적고 기억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챙겨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반대로 기억력은 줄어들고 있으니 메모에 더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매일 꾸역꾸역 메모를 하고 며칠 뒤 다시 펼쳐보면 그날 회의를 대한 태도가 보인다. 내용이 아닌 바로 글씨체가 증거다. 새 물건을 대할 때처럼 새 공책을 쓸 때의 마음가짐도 다르다. 처음 몇 장은 정성스레 작성하고 몇 장만 넘어가면 괴발개발 글씨가 등장한다. 내용을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저분한 페이지도 많다.


"필적은 '뇌의 흔적'이자 '몸짓의 결정체'입니다. 행동 습관인 필체를 의식적으로 바꾸면 성격도 바꿀 수 있습니다. 성격이 바뀌면 다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결국 인생이 달라집니다."


대한민국에서 필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구본진 변호사의 말이다. 구 변호사는 도서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글씨에는 인품과 성격이 묻어있다"는 통념을 넘어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라고 말한다.


필체 하나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품과 성격이 묻어있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중학교 시절 내 글씨체를 보더니 선생님이 서기를 시켰다. 그저 선생님 말씀을 학급 일지에 받아 적는 일이었지만 정성을 다한 적 있다. 바른 글씨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까지도 바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자필로 글을 써보았습니다_이드id>


첫 다이어리는 시작 페이지부터 너저분했다. 바쁘게 한 해를 시작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A4지 만한 공책으로 바꿨다.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끝까지 정성스러운 글씨를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인격 수양의 기회를 얻었다.


요즘 자필로 무언가를 작성하는 일은 드물다. 낭만의 상징이었던 자필 편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일반인이 볼펜을 쥘 일은 관공서 등에서 직접 이름을 쓰거나 사인을 해야 할 때 정도 아닐까. 때문에 직장에서 회의 시간에 무언가를 받아 적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중요한 회의 시간에는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거나 녹음해 텍스트를 추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소한 회의 시간에는 여전히 다이어리나 노트를 들고 참석해 정성을 담은 자필을 즐긴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자필로 무언가를 적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노트 필기 시간도 없다. 쪽지 시험을 보거나 주관식 답을 적을 때 정도 쓰려나. 요즘은 일기 숙제도 없어서 아쉽다. 일부 분실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쓴 자필 일기를 열 권 넘게 보관하고 있다. 글쓰기와 글씨 쓰기에 일기장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 일기장을 만들었다. 글씨체에서 성격이 보인다는 게 신기하다. 급한 마음이 글씨 쓰는 속도를 넘어서는 아들의 글씨는 날아다닌다. 딸내미는 자신의 글씨를 감상하고 즐기며 감탄하느라 글씨에도 여유가 보인다.


이렇게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 자필로 무언가를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성을 다해서 적어보자. 짜증 나는 회의 시간을 글씨 연습 시간이라고 여겨보면 어떨까. 더불어 ‘난 지금 인격 수양 중’이라는 마음이 내 하루를 차분하게 채워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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