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싸이월드가 복구되었다. 대부분의 사진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낯설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채 조금 감상하고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누나한테 카톡이 왔다.
"예전부터 글 쓸 조짐이 보였구먼..."
예전에 비공개였던 싸이월드 다이어리까지 모두 전체 공개로 전환돼 있었다. 대학생 시절의 글부터 28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버거움에 남긴 마음의 소리까지 가득했다. 삶의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어린 가장의 무게가 보였다. 주저리주저리 많은 글을 써놨다. 기억도 나지 않는,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글이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은 마음의 소리를 읽으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30대에도 글을 썼다. 아내와 경쟁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때는 밝고 경쾌한 글로 블로그를 채웠다. 직장생활 이야기뿐만 아니라 처음 부모가 돼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 부부싸움 한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부부의 블로그에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로 행복을 새겨 넣는 초보 부모의 산뜻한 마음이었다.
20대의 힘들었던 순간을 글을 쓰며 달랬고, 30대에는 온라인에 행복을 새겼다.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청춘 시절의 가벼운 글쓰기였다면 지금은 묵직함이 담겨있다. 억지로 담을 수 없는 중년에게만 주어지는 부담이자 특별함이다.
세상일에 정신 빼앗기지 않는 불혹의 특별함
40대의 글쓰기는 특별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혹에 접어들며 쓴 글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나이'다. 불혹은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언급된 내용이다. 삶의 전환점에서 얻은 많은 깨달음으로 진중해지는 나이가 아닐까.
중년 글쓰기의 가장 큰 축복은 그간 쌓은 경험을 현명하게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이가 불혹까지 무럭무럭 자란 만큼 글을 쓰면서 마음도 함께 성장함을 느낀다. 그동안 무작정 글에 덤벼들었다면 이제는 글을 쓰는 이유를 천천히 떠올리며 마음부터 가다듬는다.
누군가는 '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온라인에 풀어놓지?'라며 의아함을 전한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 사람, 글로 위로받지 않아 본 사람은 잘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로 글을 쓰겠지만, 중년 이후부터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거창한 위로가 아닌 사람들의 공감을 벗 삼아 심약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하나의 바람이다.
삶에 글쓰기라는 취미가 없었다면 차오르는 스트레스로 마음이 조금씩 흉포해졌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화가 들끓었을지도 모르겠다. 매번 쉽게 여기저기로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글은 나에게 마음을 다독이는 진정제다.
다음카카오 브런치에 7년째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이웃 작가를 비롯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직장인의 한탄을 교훈으로 삶은 <직장생활 관련 글>은 나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오래 견디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덜 삐뚤어지기 위한 외침이고 버티기 위한 노력이다. 흔들리지 말자는, '열심히 해'라는 새로운 마음이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 과정이다.
<가족 이야기>는 간절함이다.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가장 많이 담는다. 철없는 아들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 이야기는 이제 값진 기억으로 다시 나를 찾아온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니 아빠에 대한 기억이 더욱더 또렷이 살아난다. 당신을 오래 기억하라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어머니가 떠나기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한 순간순간을 글로 남겼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슬픔은 그리움으로 되살아 나 자식들을 위로한다. 후회와 반성도 빠질 수 없다.
중년이 돼서야 겪은 값진 경험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은근한 응원을 기대한다. 힘든 일을 담은 글에는 '나도 그렇다'라는 댓글을 기다린다. 이렇게 중년의 위치에서 글을 쓰며, 글을 읽으며 위안을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간다.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도 시간 낭비는 아니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르네 로댕이 한 말이다. 자신이 쓰는 글은 온갖 솔직한 감정의 혼합물이자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의 결정체가 아닐까.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축복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축복 속에 살 수 있다니 행운이다. 불혹을 넘겨서도 많은 이들과 행운을 누릴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누나가 말한 어릴 때부터 보였던 글 쓸 조짐이 중년이 되어 익어가는 듯하다. 많은 일을 겪은 중년이다. 부모님 덕분에 태어나 '자식'을 경험하고, 결혼해 '남편'이 되었다. 아이들이 탄생함과 동시에 나도 '아빠'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고 '불효자'로 남았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 빼고는 다 해본 것 같다. 이만큼의 값진 경험은 중년이 아니면 겪지 못한다. 경험은 스승이고 경험이 주는 깨달음은 앞으로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