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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21. 2022

교과서만 펴도 눈물 난다는 중2 딸

'원래 못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사람만 있을 뿐'


원래 못하는 수학, 원래 못하는 역사, 원래 못하는 기타는 없다.
수학과 역사, 기타 치기를 싫어하는 사람만 존재할 뿐!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산수 '가'를 맞은 적 있다. 요즘은 사라진 '수, 우, 미, 양, 가' 중 최하위, 그 이름도 찬란한 '가'다. 2학년 때까지는 반에서 5명 주는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는데, 3학년 때 산수에 감이 잡히지 않아 무너졌다. 방학식 날 성적표를 들고 돌아오는 중 친척을 만났고 그분이 내 성적표를 봤다. 아마 부모님의 망신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주산학원 보내준 덕분에 2학기 때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맛봤다. 사회 하나만 '우'고 산수 포함 모두 '수'를 받았다. 지만 그때부터 '나는 수학을 못해'라는 속마음을 품게 되었다. 주산학원 덕분인지 4, 5, 6학년 때도 수학 시험을 곧잘 봤지만, 수학은 항상 나에게 아슬아슬한 과목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첫 시험을 앞두고 '수학 못해'라는 강박이 엄습했다. 시험 전날까지 다른 과목을 제쳐두고 수학에 매진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100점이었다. 그것도 전교에서 혼자였다. 전교 1등도 100점 못 맞은 수학을 내가.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장한이가 누구?"라며 반색했다. 왕부담. 수학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몇몇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내밀며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자고 했다. 마치 내가 수학 천재라도 되는 냥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대뜸 말했다.


"저 수학 진짜 못하는데요?"


황당한 눈빛의 선생님은 갑자가 문제집으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몇 차례 내려쳤다. 우리 담임을 불렀고 마치 반항아를 대하듯 나를 쳐다봤다.


"오늘 이 상황을 부모님께 얘기해 봐. 뭐라 그러시는지..."


자초지종을 들은 담임 선생님이 침착하게 사건을 중재했다. '아, 나 정말 수학 못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 시험을 보기 전까지 수학경시대회용 문제집을 풀어 수학선생님한테 제출했다. '내 주제에 무슨…' 나와 맞지 않는 수준 높은 문제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다음 시험 80점, 그다음  60점을 끝으로 수학과 수학 선생님과거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열등감과 거부감에 발동이 걸려 수학을 등한시했다. 행여 수학 시간에 앞에 나와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할까 봐 불안 마음도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심했다. '조금만이라도 열심히 할 걸...' 그랬다면 수학 경시대회를 나가지 않았더라도 수학 실력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선생님의 폭력은 잘못됐지만 그 마음은 결국 부모의 마음 아니었을까.


30년도 지난 일이 새삼스럽게 후회로 밀려든 건 딸아이의 한마디 때문이다.


책만 펴도 눈물이 나요!


중학교 2학년 딸아이 올해 1학기 첫 시험을 봤다. 인생에서 처음 등수가 매겨지는 시험이었다. (나는 만족하지 않았지만) 공부 안 한 것에 비해 잘 나왔다며 딸아이는 만족해했다. (내 기대는 더 높았지만. 쉿! 비밀) 그럭저 시험을 잘 본 편이었다. 그런데 역사 점수가 터무니없이 낮았다. 공부를 안 했겠거니, 첫 시험이니 'No Problem!'이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거쳐,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며칠 전 기특하게 "이제 시험공부 시작해야 해요"라 말했다. "그래, 역사도 90점은 넘어야지?"라고 아무 생각 없이 했다. 중간고사 때는 역사 시험이 없었다. 평소 쿨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질색팔색 했다.


"역사를 어떻게 90점을 넘겨요! 책만 펴도 눈물이 나와요. 하기 싫어서."


대충대충 설렁설렁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분명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때는 수학에서의 해방이 마냥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안타까운 후회를 삼키곤 한다. 수학 때문에 인생이 파탄 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딸아이도 아마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딸에게 재촉하고 싶지는 않다. 뭐든 경험과 세월을 통해 깨닫는 게 진짜 효능이 된다. 자식들한테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해봐야 역효과 날게 뻔하다. (어렵지만) 공부로 잔소리를 안 하려고 늘 정신을 바짝 차린다.


최근 과학이 어렵다며 반 1등 친구에게 배우기로 했다는 딸내미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역사 공부 어떻게 한데?"

"걔는 과외한데요."

"역사도 과외를 해? 너는 과외하기 죽어도 싫잖아?"

"당연하죠!"

"그럼 친구한테 정보를 캐내!"

"EBS 책이나 사주세요. 그거라도 하게요."


내심 마음이 놓였다. '나 못해'하며 고통받다 포기한 아빠보다는 '책이나 사주세요'라 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들도 "저는 원래 못해요"라는 말을 종종 꺼낸다. 주말마다 남매와 함께 기타 학원을 다니지만, 아들은 주중에 집에서 단 한 번도 기타를 잡지 않는다. 그리고는 학원에서 기타가 잘 안 쳐진다고 기타에게 화풀이한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처음에는 "연습도 한번 안 하고 잘되겠냐?'라고 짜증 내며 핀잔을 줬다. 반항심에 발동 걸리는 말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요즘에는 "학원에서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한 시간만 열심히 치자!"라고 (이 악물고 참으며) 말한다.  행여 습관처럼 '난 원래 못해요'라는 생각을 품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들은 긍정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딸아이는 즐기며 기타를 치고 나는 늙은 수강생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집에서 수시로 연습한다. 좋아서 하는 것과 마지못해 하는 것은 결국 다른 결과에 다다른다. 아들은 악기 연주보다는 운동을 더 하고 싶어 해 기타를 그만 두기로 했다. 1년은 채웠으면 했지만 본인 의사를 존중했다. 그래도 "시 나중에 다시 기타 시작하면 전자 기타 배우면 더 재미있을 거 같아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뭐든 배운다면 대 환영이다.


원래 못하는 수학, 원래 못하는 역사, 원래 못하는 기타는 없다. 수학과 역사, 기타 치기를 싫어하는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나도 그러지 못했기에 "최선을 다했어!?"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누구나 똑같이 6년, 3년, 3년 학교를 다니는데 조금이라도 열심히 해야 시간이 덜 아깝지 않을까"라는 말을 건넨다.


최근 친구 딸이 명문 중학교 입시에 떨어졌다. 친구는 어린 나이에 밤낮없이 애쓰는 딸이 안쓰럽다고 했는데 오히려 딸은 친구에게 "아빠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미안해요. 그런데 나는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끝이 찡했다. 최선을 다해본 그 순간, 그 경험이 결국 탄탄한 경쟁력으로 빛을 발할 기회가 될  것이다.


EBS 역사 문제집이 배송되고 며칠이 지났다. 들춰봤는지, EBS에 접속은 해봤는지 묻지 않았다. 그다음은 딸아이 몫이다. EBS 책이라도 사달라는 한마디면 충분다. (놀랍게도 딸은 역사 100점을 받았다)


기타는 싫지만 유도나 주짓수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의 목적지향적인 말도 든든하다. 조금씩이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라도 더 발견해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했으면 한다. 가끔은 하나에 푹 빠져 최선을 다해도 좋겠다. 더불어 '아빠도 최선을 다해서 살게'라는 다짐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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