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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25. 2022

친구 없는 전학생 딸의 대범한 선택

'위기를 기회로 대하는 아이에게 배웁니다'


작년 5월 이사를 했다. 혼자 지하철 통학이 어려운 초등학생 아들은 이사 시기에 맞춰 전학을 갔다. 중학생 딸은 한 시간 남짓 거리를 그대로 다녔다. 이미 적응해 친구들과도 잘 지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딸아이 담임 선생님도 코로나19 시기 중도 전학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딸은 2학기에도 같은 학교를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의견을 존중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된 시기였다. 가끔 가는 학교에서도 친구들 간 접촉을 최소화할 때였다. 쉬는 시간도 5분. 중간에 전학을 가서 일면식도 없 아이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걱정됐다.


아들의 현실 한몫했다. 이사 전 동네 친구들과 해 질 무렵까지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놀던 아들은 전학 후 집에서 주로 생활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학교라 기존 아이들끼리 이미 너무 친했다. 온라인 수업에서만 새 친구들을 만나 친해질 기회도 쉬이 주어지지 않았다. 선생님도 나름 신경 쓰셨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들은 학교가 재미없다고 했다. 쓰러웠지만 시간이 약이려니 생각하며 아들과 아쉬움을 달다.


새 학년을 앞두고 딸아이가 갑자기 전학을 가겠다고 했다. 장거리 통학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전학 갈 학교는 5분도 안 걸리는 위치라 학교생활에서 모든 게 유리했다. 다만 '요즘 같은 시기에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피할 수 없었다. "OO이 잘할 거야"라는 아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빠는 쓸데없는 상상력이 풍부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 "소년에게 또래 집단 관계는 목숨보다 소중해"라고 한  뜬금없이 떠올랐다. '친구가 중요한 시기에 절친들 없이 잘 낼 수 있을까', '힘이라도 당하면?'이라는 걱정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며칠 간격을 두고 딸아이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연차를 내고 일사천리로 전학 수속을 밟았다. 며칠 뒤 딸아이는 교과서를 받으러 전학 가는 학교에 다녀왔다. 새로운 아이들과 첫 만남이었다.


"화장하고 마스크 접어 쓴 애랑 눈 마주쳐서 움찔했잖아."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에도 신경이 쓰였다. 전에 다니던 학교는 새로 생겨 선배도 없고, 초등학교 때 친구 많아 아무 걱정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전학을 생각하니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드디어 딸아이가 첫 등교를 했다.


"전 학교 애들이랑 완전 달라. 다 일진 같아. 눈 화장도 진하고 치마도 내가 제일 길어."


티 내지는 않았지만, 딸아이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며 걱정을 했다. 매일 딸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를 살폈다.


"나만 아는 애가 하나도 없어서 쉬는 시간에 뻘쭘해."

"복도에 애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겠어."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혼자 있다 왔어."

"생각보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아요."


딸내미는 저녁 먹는 동안 나를 자기 앞에 앉혀 놓고 일거수일투족을 조잘조잘 어놓다. 당장 학교 생활이 재미없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시국,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번갈아 진행지만, 전학생 신분이라 금세 녹아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1학년 때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느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딸아이는 그 시간조차 지루했는지 큰 결심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3월의 어느날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OO이가 신기하게도 전학 오자마자 회장이 되었네요. 참 훌륭한 학생입니다."

"네?"


아내는 처음에 전화가 잘못 온 줄 알았다고 했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곳에서 회장에 출마할 줄 몰랐다.


"친구들 한꺼번에 사귀려고 회장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임명장 나오면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는데... 축하 선물 사주면 안 요?"


마지막 날 후보 등록 선청을 했다고 하니 아마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한 표 차이의 극적인 승리였다. 이렇게 쿨하고 든든한 딸아이를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니. 이런 게 기우 아닐까. 아이들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제는 평일에 새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기도 하고, 주말에 새로 사귄 친구들 만나느라 바쁘다.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까지 만나 두 배로 바삐 움직인다.


시간이 약이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6학년이 돼 매일 학교에 가더니 금방 친구를 사귀고 하루하루가 바쁘다. 밖에서 놀고, 게임하고, 태권도장에서 놀고, 친구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일과가 빽빽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아이에게 배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지 않는다. 마음 하나로 뭉치고 눈 맞춤 만으로도 즐겁다. 찌들고 퇴색된 아빠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나 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잘 헤쳐나갈 수 있는데 불필요한 걱정을 했다. 전학생 아들 모습이 짠했고, 늘 발랄 쾌활한 딸내미였기에 심심하다는 말을 외로움으로 확대 해석했다. 소심한 아빠의 마음속에서 펼쳐진 조바심이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 


"요일 시간표가 너무 좋아서 학교 가고 싶어요"라는 딸아이를 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를 본받아 아빠도 새로운 곳에서의 직장생활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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