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교가 시작됨과 동시에 온 식구가 바빠졌다. 딸아이는 중학생이 됐다. 오랜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만끽하는 중이다. 멀찌감치 새로 생긴 중학교에 배정돼 심리적 부담까지 덤으로 얻었다.
퇴근하니 딸아이가 SOS를 보냈다. 학생증 사진을 내일까지 메일로 보내야 하는데 바빠서 사진을 못 찍었다는 사연이었다. 미대 출신 아빠의 포토샵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내 모든 증명사진을 비롯해 온 식구 여권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만들어 낸 전적이 있기에 자신 있었다.
보정 어플을 써서 사진을 찍으면 작업이 좀 더 간단하다. 하지만 딸아이는 작게 돋아나기 시작한 여드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순정 카메라를 고집했다. 딸내미가 씻는 동안 피부는 하얗게, 눈은 조금 크게, 턱은 약간 갸름하게 보정을 했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손을 봤다.
"짜잔! 예쁘지?"
"아빠 이거 저 아닌 거 같은데요?"
평소 딸아이는 보정 어플로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보정 어플에 대해 딸아이와 대화 나눴던 일이 스쳤다.
셀카에 환장했을 때가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진과 거리를 둔다. 늙어가는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싫어서다. 나처럼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인스타에 넘치는 미남 미녀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이가 실제의 나보다 나아 보이길 원한다. 비단 외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겉모습 부정은 내면의 자신도 꺼리는 일이다. 학력을 속이고, 경력을 속이고, 성적을 속이며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누가 나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
소설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서 달러구트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가지를 전한다. 첫째는 아무래도 삶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보다 현실적인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
허무맹랑하리만큼 평범한 교훈에서 우리는 가끔 삶의 진리를 배운다. 보정을 거부하는 당당한 딸에게 나다움에 대해 배웠다. 인생을 억지로 보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