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예쁘게 말하면 안 될까요
가는 말과 눈빛이 고우면 오는 반응도 고운 법
학원 시간을 잘못 알고 중학생 아들에게 아직도 안 갔냐고 짜증을 냈다. 아들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네? 안 늦었어요'라며 집을 나섰다. 아들이 나가고 다시 확인하니 내가 학원 시간을 잘못 알았다. 오해했다고 카톡을 보내 사과했다.
"아빠가 갑자기 화내서 조금 당황했어요."
아들에게 답이 왔다. 예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아빠의 짜증을 짜증으로 받아치지 않아서 고마웠다. 아들도 덩달아 늦지 않았다고 화를 냈으면 내가 그 화를 그대로 받아줬을까. 말에도 형태가 있고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쌀쌀맞게 혹은 퉁명스럽거나 큰 소리를 내면 상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조근조근 타이르면 아이들도 차근차근 받아들인다.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업무상 점심 미팅이 있을 때 카페나 식당이 오픈하기 전에 먼저 도착할 때가 있다. 대부분 밖에서 대기한다. 하지만 간혹 일행에 상급자가 있으면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되냐고 묻는다. 최근 상사와 강남의 A 레스토랑을 찾았다.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안 되는데요?"
예약이 안 되는 곳이라 자리를 잡기 위해 20분 먼저 도착했다. 마땅한 대기장소가 없어 계단에서 기다려야 하는 곳이었다. 종업원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식사를 하기도 전에 기분이 살짝 상했다. 주문받을 때의 말투도 역시 차가웠다.
비 오는 날 찾은 도로변 B 레스토랑에서도 오픈 시간이 되지 않아 입장을 거부당했다. 길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르바이트생이 나오더니 추울 거 같다며 들어와서 기다리고 주문은 시간이 되면 받겠다고 했다. 입장을 거부할 때의 말투도 미리 들어오라고 할 때의 말투도 친절했다.
사소한 일로 인하 기분이 상하고 싸움도 많아진 세상이다. 동네 후배가 말투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살인이 벌어지고, OO식당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는 등의 후기도 넘친다.
하지만 모두가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항상 불친절한 식당 종업원도 없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상황과 각자의 기분이나 태도에 의한 일시적 스파크인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앞서 언급한 A 레스토랑 직원도 다음번 찾았을 때는 새삼 친절한 모습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것을 넘어 요즘은 말투 하나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자신의 안 좋은 기분을 굳이 상대에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잠시 시간을 두고 기분을 조금만 가라앉히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빈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분노라는 감정은 자동으로 유발되도록 설계된 반응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뇌가 분비한 화학물질이 몸에 차오르고, 우리는 생리적 반응을 겪게 된다.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 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 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집필한 뇌과학자의 말이다. 화가 치밀 때, 화를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자녀에게 화를 내면 그 화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아이들이 똑같이 화를 낸다는 말이 아니라 표정, 말투, 눈빛에서 불편함이 드러난다. 반면 90초를 무사히 넘기고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을 유지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감정의 불씨로 많은 이가 화를 입는 세상, 가정에서 회사에서도 조금만 참고 예쁘게 말하도록 연습해 보는 건 어떨까. 가는 말, 눈빛 등의 태도가 고우면 오는 반응도 고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