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불편한 사람 둘 이야기
"동지를 만나 마음이 포근했다"
늘 사람에 대한 고민이 많다. 매 순간의 결론은 아무리 통 큰 배려를 바탕에 깔고 노력해도 여전히 사람은 힘들다는 것. 특히 직장에서.
십여 년 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사회초년생이었던 후배는 어느덧 듬직한 팀장이 되었다. 거울을 보듯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요즘은 아무도 팀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은 많고 책임은 크고 욕도 듬뿍 먹는 자리라는 게 너무 소문 나서다.
점심을 먹으며 후배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후배가 팀에서 경력직을 뽑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요즘에는 실력 필요 없어요. 다 거기서 거기니까. 착한 사람이 최고예요."
"착하기만 하면 답답할 수 있어."
"일 시키기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면 돼요."
후배는 요즘 위에서 일이 떨어지면 한참을 고민한다고 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팀원들에게 업무지시를 거부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팀원들에게 일 시키는 게 불편해졌다고. 후배 팀원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표현일 뿐.
심각한 분위기에서 나도 모르게 반색했다.
"그치? 일 시키기 어려운 사람 있지?"
나도 그렇다. 멘탈이 매우 말랑해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모질지도 못한 성격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한다는 생각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그러면서 15년 넘는 풍파를 견뎠다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지나길 바랄 뿐이다.
돌이켜 보면 멘탈 강해보이던 내 상사도 그랬다. 하기 싫다는 변명부터 늘어놓는 부하직원에게 "꼬우면 니가 팀장 하든가?"를 외쳤지만, 이후 후배에게 가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아무래도 싫은 티를 내면 상사도 눈치를 보게 된다. 선수들이다. 하지만 성격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절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잡일을 떠맡던 시절이 있었다. 성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런 유형은 착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인정한다. 그래서 타인에게도 '나처럼'을 강요하지 않는다.
무지개 같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직장이라는 작은 세상. 연초 인사평가 시즌이면 자기평가를 실시한다. 매년 마주하던 내용 중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업무에 항상 '할 수 있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접근한다"
후배와 나눈 이야기의 축약이자 자기 검열에 대한 물음이다. 십수 년 직장생활, 떠오르는 얼굴이 여럿 있어 웃음이 나왔다. 본인은 알까. 혹시 나도 그랬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돌고 돌아 직장인. 엎어치나 메치나 직장인. 세월에 등 떠밀려 어깨에 커다란 책임만 덕지덕지 붙은 잿빛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다. 피곤한 나날이다.
그래도 오늘은 사람이 불편한 동지를 만나 마음이 포근하다. 같은 마음으로 허덕이는 동지에게서 튀어나온 '불편'이라는 외마디가 가슴을 따듯하게 감쌌다.
위로도 응원도 아닌 같은 마음이 담긴 한마디일 뿐인데. 사람은 사소함에 마음 상하기도 하지만 소소함에 감동하고 위로받는다.
후배와 불편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불편한 사람은 지천에 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길에서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행동이 불편해 화가 날 때도 있고.
하지만 그들이 모두에게 불편한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내 마음에만 부합하지 않을 뿐. 혹은 내 마음이 잠시 삐딱해서 일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은 늘 어렵다.
오늘도 불편함에 굴복하지 않고 제출물로 하루를 극복했음에 안심하며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