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친 희망퇴직 바람... 희망찬 퇴사를 응원합니다
퇴사 후 해외에서 살고 있는 전 회사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 A 선배랑 연락돼요? 전화도 안 받고 카톡 보내도 안 봐서요."
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언젠가부터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물어봤다. A가 최근 희망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는 조용히 퇴사한 이후 친했던 동료들과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A는 40대 초반의 17년 차 직장인이다.
씁쓸한 연말의 희망퇴직 철이 지났지만, 그 씁쓸한 뒷맛은 여전히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A뿐만 아니라 예전 나의 팀장들, 일이 년 먼저 입사한 선배부터 동료, 후배까지 여럿이 희망퇴직 속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친구는 작년 말 2022년 희망퇴직 시행 공고문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6년 차 이상부터 30년 이상 근속자까지 차별화된 퇴직 위로금이 박힌 A4 용지가 회사 곳곳에 붙어 있다고 전했다. 15년 차 경력의 친구는 무사했지만, 친분 있는 선후배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이 나중 자신의 모습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깊이 공감했다.
'희망퇴직'은 참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용어다. 친숙한 이유는 직장을 다니는 동안 수시로 마주해서다. 그렇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최소 10년 이상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10년 근속상을 받은 해부터 희망퇴직 시행 공고를 보면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대상자가 되었네'라는 두려움.
희망퇴직 분위기도 극과 극
항상 존재했지만, 소수에게만 적용되던 희망퇴직이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 속에서 '조용한 해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범위를 확장하면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조용한 해고'는 기업이 조직 슬림화나 직무 재배치로 자리를 줄이거나 비공식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는 등 외부에 알리지 않고 진행하는 감원이다.
이미 지난해 연말 대기업 등에서 '조용한 해고' 쓰나미가 한바탕 지나갔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대기업도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는 대기업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협력사 등 중소기업에까지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져 고용 시장을 전반적으로 위태롭게 한다.
국내뿐만 아니다. 미국 빅테크라 불리는 메타(페이스북 모회사)는 지난 11월 총 1만 1000명을 정리해고 한다고 밝혔으며,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도 전체 직원 중 절반인 3700명을 내보낸고 발표했다. 직장인은 매 순간 위기를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환경에 직면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은행권 종사자들은 희망퇴직을 반긴다고 한다. 은행 실적이 좋은 시기라 희망퇴직 신청자가 급증했다고. 은행권의 호황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3~4억 원의 퇴직금을 받고 떠나겠다는 직장인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직장인은 다르다. 어려운 시기 재취업이 보장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쉽게 회사를 떠날 수 없다. 매년 연말이 되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는 직장인이 많은 이유다.
"작년 희망퇴직 공고에서 신청자는 딱 1명이래. 나머지는 다 명예퇴직이라더라."
친구 회사에서는 연말에 나간 50여 명 중 희망퇴직 신청자는 단 한 명. 나머지는 다 명예퇴직이었다고 한다. 명목만 희망퇴직인 답정너. 결국 그냥 쫓겨났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나가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팀도 있다고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서글픈 일 아닐까.
말은 희망퇴직이지만, 기업에서 리스트를 미리 정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하는 직원에게 전화도 컴퓨터도 없는 면벽 책상 배치를 하고, 응접용 테이블에도 직원 자리를 마련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 있다.
반면 희망퇴직을 원하는 사람의 퇴직 의사를 회사가 거부하는 일도 있다. 희망퇴직 신청자 중 놓치기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되면 결재를 반려하기도 한다.
당당한 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
최근 만난 친구들과 "우리도 이제 쫓겨날 나이가 되었네"라는 푸념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푸념에서 끝나면 인생도 그대로 끝나버린다는 걸 알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살 선배는 매년 시행하는 구조조정 속에서 가슴 졸이며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까지만 버티고 내년에는 부모님이 거주하는 지방으로의 귀농을 결정했다. 아내도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지방에서 일할 준비를 마쳤다. 자녀 대학 진학에 맞춰 인생 제2막을 설계했다.
직장에 다니던 한 친구는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하다며 몇 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불혹에 합격했다. 41살에 정식 발령을 받아 7년째 열심히 다니고 있다. 지난주에 동기 결혼식에 다녀온 친구를 만났다.
"동기들은 나보다 한 20살 어리고, 팀장은 나보다 4살 젊어. 뭐 어때. 요즘 같은 때 안 잘리는 게 장땡이지?"
친구는 쿨하게 말했다. 월급이 적어 힘들다지만, 하루아침에 잘릴 가능성은 낮다.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유리지갑 속 일반 직장인이 제일 위태롭다. 유리지갑만 바라보다가는 허탈하고 냉혹한 직장인의 삶 속에서 초라하게 소멸해 버린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퇴근 후 학업에 열중하거나 부캐를 키우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직장인, 건설회사에 다니며 공인중개사 시험에 대비하는 이도 있다. 공무원도 쉽게 때려치우는 시대라지만, 친구처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되고자 준비하는 회사원도 있다. 불안한 미래에 아름다운 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직장인의 삶이 어렵고 싫어도 인생을 리셋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직장인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십수 년 몸담은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에서, 좋아하는 취미에서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키우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등 떠밀리지 않는 당당한 퇴사를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명예퇴직도 희망퇴직도 권고사직도 아닌 직장인의 미래지향적인 당당한 퇴사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