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Jan 30. 2023

수십 년째 선물을 받기만 하는 친구 고발

'중년들의 맥락 없는 선물 타령 이야기'


 같은 친구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가보니 같은 지만, 말도 거의 지 않던 한 동네 사는 아이였다. 난데없이 탐구생활을 빌려달라고 했다.


뻔뻔함을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오는 친구 안 막는 성격이라 탐구생활을 매개로 절친이 되었다.


친구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기 전까지 초중고, 대학교까지 붙어 다녔다. 엄마는 친구가 유학 가지 않았다면 내가 결혼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장했을 정도였다.


유학을 가기 전 둘 다 직장인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는 일 년 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미련 없이 유학을 떠났다. 생이별이 아쉬워 친구가 필요하다는 물건사줬다. 가방과 캠코더였다. 가스라이팅의 시작일줄 몰랐다.


얼마 뒤 영국으로 떠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흑인들한테 싹 다 뺏겼다고. 안 뺏기려고 버티다가 골목으로 끌려가 두들겨 맞았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마침 나도 교통사고로 입원 중일 때였다. '나도 허리가 아파'라며 고통을 나누며 웃었다.


"아, 그냥 줄걸..."

"그니까 괜히 왜 두들겨 맞아."


대학원 졸업 후 영국이 좋아 눌러앉겠다던 친구는 우연히 지원한 국내 대기업 최종 면접을 앞두고 돌연 귀국을 택했다. 점쟁이가 최종 합격이 당연하다고 으나, 아니었다.


유학을 마치고 백수로 돌아온 꼴이었다. 백수환향. 안쓰러운 나의 베프. 동정심이 넘쳐흐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링크를 눌러보니 디지털카메라였다. 꼭 필요하다고 한다. 애 둘 딸린, 돈도 딸리는 유부남이었지만, 유학파 백수 친구에 대한 이 커 카메라를 덜컥 사줬다.


이후 친구 생일 PMP도 사주고 명품 지갑도 사줬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가스라이팅희생량일뿐이었다. 친구가 취업한 뒤에도  아무 선물도 받지 못했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선물을 사라고 닦달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기억도 못했다. "그랬나?" 라며 이제는 다 낡았으니 선물을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 잔망한 놈. PMP와 프라다 지갑 다시 받아와 중고나라에 팔다. 감정 없었다. 정말 아까워서 판거다.


12살에 만났으니 35년이 흘렀다. 친구는 사업을 하고 나는 오래 묵은 직장인이다. 둘 다 단돈 몇 푼에 휘청이지 않지만 선물 타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 친구 생일이었다. 카톡 선물하기로 5만원 짜리 스타벅스 상품권을 보냈다.


"난 선물 받은 적 없지만 생일 축하한다."

"나 줬거든?"

"선물함에 받은 게 하나도 없다. 카톡에서 선물하는 방법 모르는 줄 알았지."

"나도 너 사줬다. 분명!"

"진짜 아니거든. 계속 베풀다 보면 진심이 통할 날이 오겠지."

(친구가 카톡 선물함을 확인한 듯했다)

"너 한번 보냈거든!"

"세 번이거든. 그리고 딴 선물 포함해서 열 번도 넘거든!"

.

.

.

"나소고기 세트 보냈거든."

"한테 보낸 아니거든."

(친구가 와이프한테 신세 진 게 있어 보낸 적 있다)

.

.

"나이 먹고 이런 거 따지는 거 너무 치사하다. 그만하자."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늘 고맙다."라고 친구가 화답했다.


친구 생일날 오후 5시 57분부터 6시 17분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내일모레면 50을 앞둔 남자들의 유치한 대화가 실화라니. 


맥락 없는 대화 엉뚱한 결론.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없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마법이 펼쳐진다.


아들이 곁으로 다가와 모니터에 빠르게 쓰이고 있는 글을 다가 "아빠 선물 못 받아서 화났어요?"라며 비웃었다.


"아니. 아빠는 선물하는  더 좋아해. 알지?"


유치하지만 재미있다. 즐거웠다. 깃털처럼 가벼운 친구 사이. 그래서 가능한 둘만의 대화. 올해 내 생일에는 꼭 선물을 받아 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