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엄마와 함께 존재했던 마지막 순간
"진짜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평범한 일상 속, 당연한 생일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축하와 선물을 받았다. 매년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아이들은 "아빠! 받고 싶은 선물 없어요?"라고 묻고 나는 늘 "A4 반 분량의 손 편지?"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편지는 당연하죠'라면서 선물을 추가한 대가로 편지 분량은 대폭 줄인다. 전략인 듯하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생일 저녁을 보냈다. 일상의 평범함이 건네는 소소하고 대단한 선물이다.
작년부터 생일날은 즐거우면서도 슬픈 기억이 떠오르는 날이다. 올해가 엄마 없는 두 번째 생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엄마와 생일을 보내진 않았지만, 엄마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날은 잊을 수 없다.
2년 전 폐암 말기였던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주인공인 나는 눈물이 흐를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얼굴이 삐뚤빼뚤했다.
엄마가 앉아서 열심히 손뼉 치던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 올해 아내가 찍은 생일 축하 영상 속 나는 한없이 밝고 경쾌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엄마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와 내가 세상에 함께 존재하며 맞은 마지막 생일.
'아들 생일은 축하해 주고 가야 할 텐데'라던 바람대로 엄마는 아들과 함께 생일을 보냈다. 그리고 두 달 뒤 하늘로 떠났다. 슬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생일날마다 즐겁게 노래 부르던 엄마의 환한 얼굴이 떠올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순간이었지만 이제는 좋은 기억의 한 장면이다.
생일 다음날 저녁 반려견 꼬미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단지 내 공원을 돌고 있을 때 옆으로 한 모자가 지나갔다. 모자는 꼬미에게 귀엽다는 미소를 보내고 우리를 앞질렀다.
이십 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아들과 걷는 엄마의 뒷모습이 눈에 담겼다. 한참 모자를 바라보며 공원을 돌았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나란히 공원을 거닐며 팔을 휘젓고 주위를 둘러보는 평범한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모자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이겠지.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순간이 피어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밖에 몰랐는데,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엄마와 산이나 약수터에도 가고 산책도 했다. 엄마와 반려견(깐돌이)과 함께 동네 산에 올랐던 때가 떠올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참 건강했던 엄마였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스몄다.
의사가 엄마를 두고 여명餘命 운운하자마자 살림을 합쳤다. 아름드리나무도 많고 운동할 수 있는 널찍한 산책길도 잘 마련된 아파트다. 엄마는 내가 오늘 갔던 곳, 3~4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공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나마 집 근처 벤치에 앉아 이따금 시간을 보냈고 대부분 집 안에 머물렀다.
동네에 잠깐 나올 때도 숨이 가빠 늘 지팡이에 의지했다.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 떼며 암세포들과 사투를 벌였다. 엄마가 조금 더 건강하게 몇 년 더 살았다면 오늘 마주한 모자처럼 씩씩하게 산책로를 함께 걸었을 텐데. 아쉽고 또 아쉽다.
중3 딸아이가 생일 카드 말미에 "아빠 진짜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자식이라면 부모님께 으레 하는 말이겠지만, 유독 눈에 들어와 마음에 내려앉았다. 엄마를 향했던 내 마음이 느껴져서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자식이 부모를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더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