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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1. 2023

우편함에 수북한 독촉장과 미납 고지서에 담긴 고독  

엄마의 2주기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낮 최고 기온이 36도를 웃돈 주말,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금요일에 퇴근 후 집 안에만 머물다 월요일 출근길에 비로소 현관문을 열었다.


주말 내내 방에 틀어박혀 에어컨을 틀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심사숙고해 고른 영화 몇 편은 실패. 하지만 이틀에 걸쳐 읽은 책 한 권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마음을 뒤흔든 책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다. 누군가 고독사한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집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되돌리는 특수청소업 종사자의 에세이다.

    

작가는 자기 경험을 담담하지만 조심스럽게 책에 담았다.

 

그 어떤 죽음도 쉽게 재단할 수 없다


원룸에 잠시 머물고자 꾸린 텐트에서 자살 준비를 한 28살의 여성. 그녀의 곁에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책 5권이 남아 있었다. 첫 사연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물이 고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벼랑 끝에서 외롭게 버티다 삶을 마감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외로웠다. 살고 싶다는 절규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고, 죽어서 남긴 악취만 주변 사람들에게 도달했다. 죽음을 알리는 방법이 악취라니. 특수 청소와 함께 사라지는 망자가 남긴 삶의 흔적도 허무하기 그지없다.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타인의 고독한 죽음을 책으로 마주하면서 그 어떤 죽음도 쉽게 재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 얘기라고 '죽긴 왜 죽어'라며 쉽게 말한 적은 없었을까. 살기 위해 애썼을 누군가의 마지막 발버둥을, 침통한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나.

 

우편함에 수북이 꽂힌 독촉장과 미납 고지서, 끊긴 지 오래된 수도와 전기는 떠난 이들이 남긴 교집합의 모습이다.


"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 보다."

 

작가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 없고, 죽어서 방치된 자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 가족과의 관계도 끊긴 지 오래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지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건 남자.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밀어붙인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죽고 남겨진 것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

 

가장 마음 아픈 내용이다. 죽음을 결심한 남자는 특수청소업체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떠날 집을 청소하는 비용을 알아봤다. 작가와 통화한 그는 며칠 뒤 자살했다. 그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기에 더욱더 허탈한 죽음. 청소업체에라도 자신의 심경을 알아달라는 마지막 기척을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책 덕분에 깨달은 '고마운 이별'


흔하고 흔하지만 남 일 같은 죽음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이 그리 낯설지도 무섭지도 않을지 모른다. 재작년에 엄마가 떠났다.

 

책을 읽으며 여전히 안타깝고 절절한 엄마와의 이별을 떠올렸다. 책에서 마주한 죽음과는 사뭇 다른 이별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 암 엄마와 한 달 반을 보냈다. 아침에 함께 눈뜨고, 함께 밥을 먹고, 초콜릿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결혼해 출가한 이후 이렇게 엄마와 오래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가. 막연한 슬픔을 조금 걷어내니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한 이별이 보였다.


아들딸과 함께한 엄마의 마지막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책 덕분에 곧 다가올 엄마의 2주기를 작년보다는 조금 더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던 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 많은 순간을 함께하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었음을 이제야 감사한다.


국가보다 개인 역할이 더 중요한 이유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마주한 쓸쓸한 죽음의 흔적들. 여운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며칠 동안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에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 죽음은 슬프고 무서운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이 지독한 외로움을 동반하는 순간 짙은 비통함이 엄습한다.

 

작가는 독자가 타인의 죽음을 이해하며 죽음과 삶의 의미를 떠올리고 조금이나마 용기 있게 삶을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이들이 자신의 어깨를 한번 더 두드리며 작은 희망의 불꽃이라도 되살리길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책에서 다룬 고독사는 사회적 고립에서 비롯한다. 개인의 범주라고만 여겼던 죽음까지 국가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삭막한 시대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가 발 벗고 나선다 해도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이는 어쩌면 주변 이웃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편함에 수북이 꽂힌 독촉장과 미납 고지서, 끊긴 지 오래된 수도와 전기는 떠난 이들의 마지막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혹은 이웃과 인사만이라도 주고받는다면 그들의 고독이 조금은 덜 위태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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