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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3. 2023

역전세난 주인공이지만, 오늘만은 위안이 됩니다

엄마를 닮은 초긍정 마인드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엄마는 2년 전 오늘, 하늘나라 별장으로 떠났다.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해 부랴부랴 합가 했다. 집에서 2개월 남짓,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한 달 반을 함께 보냈다. 결혼해 출가한 후 15년 만에 가장 오래 엄마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떠나는 찰나의 순간까지.




항암제를 바꾸었지만 소용없었다. 주치의는 3~4개월 뒤면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할 거라고 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의 폐암 판정 이후 모든 기대는 항상 물거품이었다. 이번에도 최악의 상황이 어김없이 찾아왔음을 예감했다.


당장 우리 집과 엄마 집을 모내놓았다. 합가를 위함이었다. 앞으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아갈 방 4딸린 널찍한 아파트를 구했다.


21년, 매매가와 전세가가 정점을 찍을 때 이사했다. 대출 따위는 대수가 아니었다. 엄마가 점점 소멸해 가는 것만 같은 2개월을 초초하게 기다려 이사한 고마운 집이다. 엄마는 잠시 머물다 떠났고 오늘이 엄마의 2주기다.


2년은 금방이었다. 이 집에서 오래 살기 위해 이사를 왔지만, 이제는 엄마 없는 집이다. 형편 때문에 가끔 이사를 떠올렸고, 지난 4월 말이 전세 만기였다.


이때는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집 값이 뚝뚝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전세가가 매매가를 역전했다. 전세가도 2억 가까이 빠졌다.


'지긋지긋한 전세살이, 집을 살 타이밍인가?'


많은 사람이 경기 침체에 허덕일 때 남몰래 가계 경기 부흥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평수를 조금 줄여 아파트를 사든, 평수를 줄여 다시 전세로 이사를 가든 대출금을 상당 부분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었다. 집이 빠지지 않으면 번거롭게 이사 가지 않고 재계약하는 것. '운 좋으면 최대 2억은 돌려받을 수 있겠지!'


홀로 상상의 나래 한없이 펼다.


'이 참에 차도 하나 마련해야지!'


21년 말 폐차 후 반도체 수급 대란과 맞닥뜨렸다. 대기 기간 최소 6개월 이상, 중고차 가격도 새 차를 능가하던 때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필요할 때마다 굽신굽신 아내의 출퇴근용 경차를 이용했다. 시간만 나면 차를 검색했다. '무슨 차가 좋을까'


이제 실전에 돌입할 일만 남았다. 최소 2개월 전 임대인에게 전세계약 종료를 알려야 한다. 넉넉하게 4개월 전, 근거를 남겨야 하기에 계약 종료를 문자로 알렸다.


임대인이 고민해 작성한 장문의 답변 문자가 왔다. 요점은 '돈 없음. 개인 대출도 불가.' 심장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빌라왕 사건, 역전세 등 언론에서 연일 떠들썩했지만, '내 일은 아니겠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설마를 버리지 않았다.


2년 전 집을 구할 때가 떠올랐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픈 엄마와 함께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기에 이것저것 따질 매물도 시간 없었다.


심지어 이 아파트는 임인이 갭투자한 집이다. 본인 자금 몇 천만원과 나의 전세자금으로 마련한 집. 내 돈을 열 배 넘게 보탰는데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집.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설마'에 의지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시간은 금세 지났다. 최악(재계약)이라고 생각한 상황이 오히려 최선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또다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때부터 뉴스에서 큰일 났다고 떠드는 모든 상황에 내가 있다.


임대인과 차례 통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문자도 하고, 부동산에도 연락해 조언을 구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결 이 집에 눌러앉기로 재계약을 했다. 상호 접점을 찾아 전세금 '몇 억'을 내려 다시 계약.


그런데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다. 오히려 금리 때문에 나가는 돈만 대폭 늘었다. 대출금도 그대로 연장해야 했다. 2%대로 받았던 대출금리는 시대 상황이 반영 돼 4%까지 올랐다. 지금도 이자를 오롯이 홀로 부담하는 지경이다.


물론 재계약하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내가 부담한 대출이자도 나중에 임대인이 일괄 정산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 홀로 당장 감당해야 할 손해는 도미처럼 이어졌다. 가스, 전기 요금 인상. 관리비 폭탄도 부담과 스트레스였다.


가장 답답하고 억울한 건 임대인은 당장 아무 손실이 없다는 사실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상해서 애써 떠올리지 않으며 살고 있다. 아내가 물으면 떠올리기도 말하기도 싫으니 묻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 2주기떠올리다 눈이 커졌다. 엄마와 살림을 합칠 때 들여온 TV, 침대, 소파, 냉장고, 실내와 자전거 등 엄마의 수많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두 집을 합친 덕분에 집에는 TV가 3대, 침대가 5개, 책상이 5개, 소파가 2개, 냉장고 3대다. 엄마가 쓰던 세탁기만 처분하고 모조리 쓸어와 이 집에 보기 좋게 구겨 넣었다.


엄마가 건강해져 '다시 편하게 혼자 살고 싶어!'라고 말하면 다시 살림을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처분하지 않았다.


2주기가 다가오니 엄마가 모시던 긍정의 신이 기척을 보낸 걸까. 이사를 가면 당장 이 거대한 살림을 정리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더불어 엄마의 흔적도 사라지겠지.


거실에 앉아 집안을 둘러보니 잠시지만 이곳에서 함께했던 엄마의 기억과 흔적이 곳곳에서 살아났다. 속속들이 다시 살펴보니 살림이 넉넉해져 생활하기 좋은 점도 많다.


당장의 삶은 빠듯하다. 살아야 하니 아등바등 살아가는 중이지. 하지만 오늘, 엄마의 초긍정 마인드를 떠올리며 '좋아질 날이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 집에 엄마는 없지만 짧고 강렬했던 흔적은 여전하다.


역전세, 대출금, 대출이자, 관리비 폭탄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엄마의 포근함을 느껴본다.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의 흔적을 조금 더 기억하며 좋은 때를 기다려 봅니다.

혹시 엄마가 도와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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