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이가 들면서 내 마음이 내 글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참 놀랍다. 사원시절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팀장이다. 내가 14년 넘게 퇴근 후 글을 썼다니 대박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 두 번째로 꾸준히 해온 일이 글쓰기다. (정말 슬프게도) 대망의 첫 번째는 직. 장. 생. 활.이다. 따지고 보면 직장생활 덕분에 글쓰기도 가능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부 같은 사이랄까. (아... 언제까지 회사에 다녀야 할까요?)
사원 말호봉이었던 2010년부터 글을 썼다. 대리, 과장, 차장을 거쳐 팀장이 된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고 계속 쓰고 싶다. 십수 년 넘는 세월 동안 직장생활 이야기를 주야장천 썼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법이 있었다. 바로 연륜.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는 눈이 달라지니 생각도 진화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직장생활 노하우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비법, 바로 경험의 힘이다.
2010년 8월부터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썼다. 처음에는 주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헤맸다. 고민 끝에 9월 말부터 직장생활 이야기를 꺼냈다.
싱그러웠던 30대 초반이었다. '첫 글이 뭐였더라?' 궁금해 찾아봤다. 어그로를 끌기 딱 좋은 제목. <직장 내 소문, 와이프 임신한 남직원은 불륜의 주인공?>이었다. 내가 당했던 억울한 사연이기에 제목을 참 과감하게도 뽑았다.
바로 이어진 글이 <대기업 다니는 여자가 결혼을 안 해도 되는 이유?>였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쓴 여사친 이야기다. 포털 메인을 오랜 시간 장식한 덕분에 욕을 아주 듬뿍 먹었다. 악플이 400여 개 달렸다. 지우고 지우다 포기했다. 180여 개가 아직도 남아있다.
인내심을 발휘해 그 시절 내 글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당시 내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 나열이 대부분이었다. 제목 덕분에 조회수가 높은 글도 있었지만, 악플 400 테러에 멘탈이 휘청이던 시련도 겪었다.
사원일 때는 업무에 대한 어려움이 크게 없을 때였다. 회사에서 막내다 보니 선배나 상사에 대한 글을 주로 썼다. 특히 그들에게 불평불만이 참 많았다. 이해와 깨달음을 담기보다는 못마땅함을 주로 표출했다.
대리가 되니 몇 년 차이 나지 않지만, 후배들이 생겼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했다. 후배들의 못 마땅한 모습을 찾아내 글을 썼다. 예를 들어 인사 안 하는 후배를 살짝 비꼬는 글 같은. 새파란 대리 나부랭이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마음을 슬쩍 품었던 것 같다.
과장이 되니 회사에서 팀에서 요구하는 것이 늘었다. 글의 주제로 업무 관련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한 주제를 발굴했다. 일도 늘고 책임감과 걱정도 늘어났던 시기라 글의 내용도 '과장급'을 닮은 것 같다.
무심한 세월 덕분에 순식간에 차장이 되었다. 차장급은 보통 팀장과 팀원의 가교 역할을 요구받는 자리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위로 가는 문이 점점 좁아지기에 경쟁이 치열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상사와의 갈등, 사람에 대한 고민을 많이 끄적였다. 부담스러운 자리를 향해 나가야 하는 직급이 주는 무거움이었다.
팀장이 되니 전혀 다른 세상이 보였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모든 직급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러면서 불편한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직관리의 어려움을 체감하며 예전 팀장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마음이 갑자기 넉넉해진 것은 아니지만, 넓어져야 한다는 걸 배운다. 리더는 감정을 조절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더불어 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 간다. 요즘에는 이 같은 서글픈 마음과 다짐을 담은 글이 차근차근 생성되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이 곧 나다'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인생이다. 직급에 따른 업무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 이야기를 나열하니 새롭다.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떠올리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반면 부끄러운 마음도 함께 밀려든다.
불혹을 넘으니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담았던 자기계발서를 통과해 일상의 감정을 듬뿍 넣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책을 냈던 출판사 대표님께서 슬쩍 흘리신 말 때문이다.
"작가님, 에세이도 써 보세요. 잘 쓰실 거 같은데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바람처럼 지나간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의 온갖 감정이 뒤죽박죽 내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원래도 감성 터지는 민감하고 예민한 남자였다. 중년에 접어드니 크리스탈 같은 연약한 마음이 하늘을 찌른다. 속마음을 조금씩 글로 풀어냈다. 나의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로 번졌고, 자식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장되었다.
세월이 무심하게도 흘렀다. 나이가 들고 얼굴도 변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마음의 변화다. 눈물이 부쩍 많아진 건 중년부터 누릴 수 있는 놀라움,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 탓이겠지. 이렇게 세월에 따라 내 글의 주제도 마음도 시나브로 변해간다.
글쓰기와 함께한 14년의 세월이다. '내가 이렇게 변해왔구나'를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느껴본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내 마음이 내 글이 또 어떠한 변화를 맞을지 궁금하다. 좀 더 깊이 있고 넉넉한 마음을 담은 글을 쓰는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