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150장을 난도질당했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꼼꼼하게 보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이의 직무유기

by 이드id


<2018년 8월 카카오페이지에서 독점 연재 제안을 받았습니다>


2018년 3월에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던 8월 초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카카오페이지 독점 연재 제안을 받았다. 판교의 카카오페이지 본사까지 찾아가 미팅을 하고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카카오페이지 담당자는 당시 유명했던 책 <마케터의 일> 감명 깊게 읽었다며, 비슷한 스타일의 직장인 자기계발서 출간을 기대했다. 그 정도 능력은 안 되지만, 십수 년 직장생활 경험을 살려 기획안을 작성했다. 카카오 측과 논의를 마친 후 원고 작성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지의 원고 작업 방식은 앞서 두 권의 책을 낼 때와 조금 달랐다. 지고 보면 형식은 비슷했다. 글쓰기 인생에서 최대의 쓴맛을 봤는 게 다를 뿐.


앞선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내 글을 많이 손대지 않았다. 책 제목이나 차의 제목, 비문 등 일부만 수정했다. 첫 책을 출간할 때도 원고를 대폭 수정한 적 없고 크게 지적받은 일도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윤문'이었다. 윤문은 '글을 윤색함'을 뜻하고, '윤색'은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함'을 말한다. 내 글이 매우 완벽해 고칠 게 없어서가 아니다. 내 글을 매만져 조금 더 자연스럽고 곱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카카오 측에서 내 원고 전담 윤문 담당자를 정해주었다. 사실 윤문이라기보다는 빨간펜 선생님이 더 어울렸다. 그분과 논의하며 마지막까지 원고를 수정 및 보완하며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1차 초안은 2018년 12월 초 완성해서 전달했다. 윤문 담당자에게 사정이 생겨 원고 수정은 2019년 5월부터 시작했다. 빨간펜 선생님과의 행복한? 고난 길이 펼쳐졌다.


첫 수정본을 받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모든 글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리적으로 분석한 피드백이었다. 틀에서의 타깃층(독자) 혼재부터 장의 근거 부족, 출처 불분명, 설명 부족, 공감 안 됨 등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끔하게 짚어주었다.


150장가량의 워드 파일에 꼼꼼하게 적힌 80여 개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디테일한 피드백이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도 쓰렸다. 하지만 첫 독자가 전하는 고마운 조언이었기에 인정하고 흡수했다.


"글쓴이의 판단만 있고 근거가 객관적이지 않아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업무에 오해가 있는지는 어떻게 확인하게 되었나요? 오해는 누가 했나요?"

"'비아냥거리다'와 '업무에 대한 오해' 사이에 간극이 있어서 보충 설명이 필요해요."

"사자성어 선택이 잘못돼 바꾸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 빼면 어떨까 합니다. 작가의 특수한 경험이 강조되는 데 그치는 것 같아서요. 일부 내용이 아래에서 겹치기도 하고요."


아래는 첫 메일에 담긴 내용의 일부다.


"(중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20개의 꼭지 가운데 네 장 정도의 대상 독자가 애초에 정한 타깃 독자층(신입 사원, 사회 초년생)이라기보다 상사, 선배 직원에 가까워요. 한두 장은 독자층이 섞인 것도 있고요. 이 네 장을 타깃 독자층을 대상으로 해서 글을 대폭 수정할지, 아니면 그냥 가고 타깃 독자층을 직장인 일반으로 넓힐지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아요.(중략)"


이 밖에도 내가 글에서 인용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바뀌었다며 삭제나 교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내가 인용한 글의 출처를 찾아 넣고 기사 인용 글은 연도까지 확인했다. 기사가 너무 오래됐으면 빼자고 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정성을 다해 글을 다듬어 주는데 귀 기울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전체 문맥을 다듬는 건 기본이었고, 2차 원고 수정까지 포함해 100가지(메모)가 훌쩍 넘는 부분을 뜯어고치며 수정하고 보완했다. 이 의미 있고 지난한 작업은 8월 말 마무리되었고, 9월 말부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가 시작되었다.


처음 받은 커다란 관심 덕분에 나는 성숙하며 숙성했다. 글을 쓰면서 좀 더 꼼꼼하게 내 글을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늘 제삼자의 눈으로 내 글을 보려고 노력한다. 내 글에서 이상하고 모자란 부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내가 다 아는 얘기라고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 독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염두에 둔다.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잘 쓴 글이라는 것도 배웠다.


윤문 담당자가 남의 이름을 달고 나갈 글을 꼼꼼하게 주었다. 내가 쓴 글을 그보다 더더더 꼼꼼하게 보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이의 직무유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역시 감회가 새롭다. 14년 동안 글을 쓰며 벌어진 이야기를 연재하는 중이다. 과거를 자주 소환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수시로 나를 돌아보며 과거에서 오늘을 배운다. 글도 쓰면서 깨달음도 얻고 금상첨화다.


이 글을 쓰면서 윤문 담당자의 마음도 헤아려 본다.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첫 독자이자 전문가의 의견을 십분 공감하고 존중한다. 덕분에 훨씬 더 매끄럽게 내 글이 완성 됐으니까.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한 글이 탄생할 수 있게 도와주신 윤문 담당자분께 감사한다.




2018년 8월에 카카오페이지에서 제안을 받고 원고를 작성하면서 (지금은 사라진)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신청했다. 같은 해 10월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카카오페이지 1차 원고 마감이 12월 초 끝남과 동시에 12월부터 위클리 매거진 연재가 시작되었다. 이 연재 덕분에 3군데의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 제의를 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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