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을 읽은 독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글쓰기 촉발 에너지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급속 충전된다

by 이드id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무심하게 지내온 시절인 줄만 알았다. 즘 14년의 글 여정에 대해 돌아보는 중이다. 내 인생 1/3을 글쓰기와 함께했다. 내 삶에 특별한 일이 다수 발생했음을 새삼 느낀다.


이렇게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다시 추적할 수 있는 것도 글쓰기(기록) 덕분이다. 여기저기에 삶의 흔적을 남겨 놓았기에 과거를 떠올리기 용이하다. 기록은 소중한 자산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까지 6권의 책을 썼다. 신간이 나오면 출판사에서 여기저기서 도서 리뷰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온라인에 조금씩 리뷰가 올라온다. 누군가 SNS에 책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짧은 소감을 남기기도 한다. 인상 깊은 구절만 골라 올리기도 하고. (사실 책 리뷰가 많지는 않지만 좌절하지 않아요)


출간을 하면 비슷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상이다. 이중 매우 인상 깊어 뇌리에 콕 박힌 특별한 리뷰가 하나 있다. 심지어 육성으로 소감을 직접 들었으니 더더욱 잊을 수 없다.


2018년 두 번째 직장인 자기계발서를 출간하고 얼마 뒤 겪은 특별한 경험이다.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오래오래 가슴에 머금고 있다.


어느 날 다른 부문에 근무하는 임원이 나를 불렀다.


"장 과장, 혹시 OOO 전무님 아나?"

"저 입사 초까지 계셨던 거 같은데, 성함은 알아요. 무슨 일이신데요?"

"그분 아들이 장 과장이랑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던데?"


사연은 이랬다.


은행에 다니는 한 회사원이 사표까지 쓰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의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를 위로하려고 책을 한 권 선물했다. 남자 친구는 그 책을 읽고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


남자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직장인이라는 작가가 궁금해 검색을 했다. 그가 아버지께서 퇴직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그 작가를 몰랐다. 대신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현직 임원을 통해 작가를 찾아냈다.


그 책이 내 책이었고, 그 작가가 나였다.


"O 전무님한테 장 과장 연락처 알려줘도 되지?"


이렇게 독자와의 전화 통화가 성사되었다. 나보다 10살 넘게 어린 사회초년생이었다. 내 책을 읽고 매우 공감을 했고, 덕분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며 마움을 전했다. 사실 내가 해줄 특별한 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같은 직장인 입장에서 징그러운 직장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눴을 뿐.


서로의 직장생활을 응원하며 통화를 마쳤다. 내 인생 첫, 독자와의 통화였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전화를 받은 내 마음이 더 고맙고 뿌듯했다. 그 마음을 전하고자 내 첫 책도 한 권 보내주었다.


초보 글쟁이에게 이만한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독자의 전화 한 통이 글을 오래도록 쓰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묵묵히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렇게 글쓰기 촉발 에너지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급속 충전된다. 14년 넘게 퇴근 후 글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그간 글과 함께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이런저런 원고 요청이나 강의 요청도 받았다. 출간 제의도 받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블로그 연재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책을 쓴다는 이유로 상사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400여 개의 입에 담지도 못할 악플을 보고 기절초풍할 뻔한 일도 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소박한 직장인이 이런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었을까. 글쓰기가 없었다면 이 징그러운 직장생활을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글쓰기는 내가 쓰러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내 삶을 아주 특별하게 디자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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