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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29. 2023

아내에게 딱 걸린 연애편지 100장

글이 이어주는 따듯한 추억이 가슴에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


글쓰기 하면 또 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중학생 때의 일기 속 다짐에 '편지를 가끔씩 쓰자'가 등장했듯 초등학생 때부터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물론 대학생, 군인일 때도 내게 편지는 일기만큼 정겨운 벗이었다. 젊은 이드id에게 일기장뿐만 아니라 편지지 역시 글쓰기 놀이터였다.


받은 편지 역시 모두 보관하고 있다. 수백 통의 편지를 언제 모두 열어 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정성이기에 쉽게 버릴 수는 없다. 학창 시절 편지가 반, 군대에서 받은 편지가 반인 듯하다. 행복한 추억을 한 보따리 품고 살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 아니고, 평생 간직해 온 편지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편지가 반송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보낸 편지를 다시 볼 일은 없다. 그런데 만약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결혼 후 결혼 전 썼던 연애 엽서 100장을 아내에게 딱 걸린 적 있다. 아내를 모르던 어린 시절에 쓴 엽서였지만 당황스러웠다. 더욱 황당했던 이유는 나는 분명 이 엽서를 모조리 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어머니 댁에서 함께 제사 준비를 하던 아내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오빠도 편지 쓸 줄 아네. 아주 자~알? 100장씩이나?"


영문을 모르던 나는 "원래 편지도 잘 쓰고 글씨도 잘 써!"라고 답했다. 몇 분 후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나보다 예쁜 애는 없네. 봐준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뭘 본 거지? 그동안 모아둔 편지를 봤나?' 조금 찝찝했지만 연애편지나 전 여친 사진은 결혼 전 다 처리했기에 당당함을 유지했다.


"제삿날에 뭔 소리야? 음식 준비나 하셔."


퇴근 후 어머니 댁에서 제사를 지냈다. 식사를 하면서 "내 방 뒤졌어?"라고 물으니 아내는 방긋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그 순간 엄마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에게 슬쩍 물어봤다.   


결혼 전에 내가 쓰던 방을 엄마와 함께 정리하던 아내는 우연히 100장의 연애 엽서와 전 여친들 사진을 발견했다. 분명 내가 다 내다 버린 것들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재활용을 위해 베란다에 엽서랑 추억의 사진들을 내놓았다. 엄마는 그것들이 내가 받은 엽서라고 생각해 다시 수거했던 거다. 내 방에 다시 돌아온 엽서를 보고 있는 아내에게 엄마는 당당하게 말했다.


"한이는 이런 거를 참 많이도 받았어."

"아닌데요? OO 아빠가 다른 여자한테 쓴 건데요?"


사진도 엄마가 도로 가져다 놓은 거였다.


"너도 있는 사진이라 버리기 뭣해서 다시 챙겨 놨지."


역시 아들 사랑은 엄마다. 엽서 100장은 군대에 있을 때 짝사랑하던 누군가에게 주려던 거다. 추억을 꿀꺽 삼키고 그날 부로 엽서와 사진이랑 영원히 이별했다.


"나한테는 편지한 통 안 쓰더니, 딴 여자들한테는 많이도 썼나 봐? 난 오빠한테 저런 편지 한 번 못 받아 봤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랬다. 아내와 연애할 때는 디지털 시대였다.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없었다. 그래도 뜨끔했다. 다시 편지를 쓰기로 다짐했다.


손 편지가 그리운 요즘이다. 가족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정성을 담아 아내, 아들, 딸에게 손 편지를 써주고 있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일기장만큼이나 낡은 편지 보관함을 열었다.


<소중한 나의 편지들, 언젠가는 모두 정독해야지!>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젊음의 순간이 모두 깃들어 있었다. 누군가 날 위해 남긴 글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추억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행복이다. 글이 이어주는 따듯한 추억이 가슴에 방울방울 맺혔다.


군대에서 받은 부모님 편지를 보니 눈가가 촉촉해지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간다. 그 당시 젊었던 부모님 모습이 너무 생생하기에, 그때는 몰랐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십분 느낄 수 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다. 글이 이어주는 부모님과의 재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지금 쓴 내 글이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기에, 오늘도 두근두근 설렘을 가득 품고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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