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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8. 2023

'와이파이 절단 Day'를 만들어 볼까

함께 책을 읽고 일기도 쓰는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7월 마지막 주말. 친구네 집에서 조촐하게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다. 9시 반쯤 집에 돌아왔을 때 온 가족이 우르르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보통 꼬미(반려견)가 가장 먼저 달려와 난리를 치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라. 뭐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에게는 매우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


"아빠 4시간째 와이파이가 안 돼요. 하도 할 게 없어서 지금까지 책만 봤다니까요!"


할 게 없어서 책을 봤다는 슬픈 말 그렇지만 반가운 말. 들 스마트폰은 데이터가 제한돼 있다. 7월 말이니 이미 데이터는 바닥이 났다. 와이파이를 잡아 써야 하는데 안 되니 당황한 것이다.


휴대폰 사용 시간도 중3 딸은 3시간 반, 중1 아들은 2시간이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밀도 있게 스마트폰을 활용하곤 한다. 적은 시간 같지만 딸에게는 아빠에게서 강탈한 아이패드가 있고, 아들에게는 용돈을 모아서 마련한 게임용 컴퓨터가 있다. 작은 화면 대신 조금 더 큰 화면을 바라 보라는 부모의 바람을 담은 작은 배려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도 사용 시간은 지킨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지켜왔기 때문에 큰 불평불만은 없다. 언제까지 부모가 관여할 수 없기에 딸아이는 내년부터 자율에 맡길 생각이다.


"저는 시간제한 안 해도 별로 안 쓸 거 같은데요?"


딸아이는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정말일까?) 믿어야지.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집에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침대에서 구는 모습을 보면 불편함이 엄습한다. 아이들에게는 잠시잠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왠지 모르게 타들어 간다. '어른도 제어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거울을 바라보는 듯한 마음 때문이랄까.


그런 아이들이 와이파이 덕분에 책을 읽었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았다. 방학할 때면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두 가지가 있다. 일기와 독서다. 올여름 방학에도 심사숙고해 학년별 맞춤형 책을 각 4권씩 선물했다. 딸내미 첫마디가 가관이었다.


"아빠 이걸 다 돈 주고 샀어요?"

"그럼, 당연하지!"(웃음)

(* 속마음: 그럼 훔쳐왔겠니? 부디! 제발 좀 다 읽어줄래?)


8권이면 얼추 10만원은 넘는다. 누군가(작가)의 꿈을 사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선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 읽는다면 100만원도 아깝지 않을 자신 있다.


책을 사주고 일기를 쓰라고 해도 실천은 아이들 몫이다. 방학이 벌써 끝나간다. 잔소리는 다시 나의 아픔으로, 스트레스로 돌아올 수 있기에 일절 하지 않는다.


일기는 아주 가끔 쓰는 거 같고, 책은 읽는지 모르겠다. 애들 방에 가보면 책이 침대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늘 변함없는 디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자기 전 들여다보면 독서를 할 때도 있는데,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만들어낸 연출컷일 가능성도 있다.  


초중고대까지 이미 허무한 방학을 수십 차례 경험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매우 아깝고 다시 올 수 없음을 안다. 억지로 시킨다고 갑자기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기에 마음으로 은근슬쩍, 지나가는 말로 소심하게 응원할 뿐이다.


중학교 때 쓴 일기에는 방학 때 시간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고, 계획 없이 지낸다고 아버지께 혼났다는 내용이 가득하다. 혼난다고 갑자기 바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더 안타깝다.


얼마 전 조카 결혼식장 화장실 소변기 앞 본 문구가 마음에 들어 외워왔다. 중국 격언이란다.


"산을 옮길 수 있어도 습관을 바꾸기 어렵고 바다는 메꿀 수 있어도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


작은 습관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지만, 아이에 대한 부모의 욕심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와이파이라는 변수. 와이파이를 손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방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아이들을 불렀다. 할 것도 없는데 같이 책이나 읽고 일찍 자자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아들은 일기도 한편 썼다. 다음날 와이파이를 고쳤다.


와이파이가 없어서 할 게 없다는 안타까운 말, 매월 아이들 데이터가 소진될 때 즈음 하루 이틀 정도 슬쩍 '와이파이 절단 Day'를 만들어 볼까. 계획대로만 된다면 흐뭇하기 그지없을 것 같다. 한 달에 하루 이틀이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기 전에 함께 책을 읽고 일기도 쓰는 시간을 보낸다면 먼지만큼 작은 습관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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