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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27. 2023

선생님께 찍힌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속마음

딸을 보며 30년 전 아버지의 지혜를 떠올립니다


딸내미는 중학교 3학년이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운동도 상당히 잘한다. 악기도 잘 다루고 상도 많이 받았다. 똑 부러지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은 아빠는 생각했다.


선생님 시각은 달랐다. 아니 서서히 달라졌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전학 가자마자 회장에 당선되었다며 "참 훌륭한 학생입니다" 칭찬 일색이던 선생님은 한 학기가 지나고 딸아이 문제점만 찾아냈다.


모범생처럼 생활하던 딸아이가 친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담임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던 딸 한마디로 생님께 찍혔다.


"OO이 다른 반 친구들이 우리 반으로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반 아이들이 불편할 정도입니다."


담임이 면담할 때 아내에게 말했다. 과도한 친구 확장, 지각, 반항기 있는 눈빛 등 딸내미는 담임의 마음에 들지 않는 회장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 동안 방과 후 교실 청소도 했다.


딸을 향한 선생님의 안타까운 마음도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부모 마음은 심란했다. 반면 딸아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한테만 매일 뭐라 그래요. 선생님 이상해요."


딸아이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사실 이길 바랐다. 3학년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부모의 서글프고도 슬픈 바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아내가 딸아이 3학년 공개수업을 할 때 학교에 갔다. 사복 입은 무리들이 복도에 모여 삐딱하게 서서 떠드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런데 그 중앙에 딸내미가 떡하니 있었다고 한다. 제일 삐딱한 자세로.


사복 문제로 선생님께 지적당하고, 킥보드를 타다 사진이 찍혀 담임한테 전화가 왔고, 집이 코앞인데 지각을 3번해 아내가 학교에 불려 갔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이 내 딸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대학교 때도 지각 한번 안 했고, 근 20년 다닌 회사에서도 지각이라는 걸 모르고 산 아빠가 보기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무리 냉정하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딱히 문제아는 아니었다. 말도 잘 통하고 평소 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선생님께 받은 지적은 팩트지만, 딸을 더욱더 잘 아는 아빠의 객관적인 마음도 팩트다.


딸아이 지각 문제로 아내가 학교에 불려 간 날, 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 불현듯 아버지가 떠올랐다.


"성적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집에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집에서 공부 안 하는 거에 비하면 훌륭한 성적입니다."


30년 전,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 성적표에 적은 글에 아빠가 답한 내용이다. 선생님이 아빠와 면담한 후 나를 불러 웃으며 아버지가 참 훌륭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성적표 멘트는 집에서 혼나라는 작전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나를 믿고 응원해 주셨다. 오히려 공부를 더더욱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 나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밖에서 여사친들과 어울리다가 담임과 여러 번 마주쳤다. 그 뒤로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시험을 잘 봐도 못 봐도 구박을 받았다. 담임의 선입견에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달랐다. 학교 밖에서 여사친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다 담임과 마주쳤을 때 담임은 방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내는 믿음과 사랑 담임에게도 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믿고  응원했기 때문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믿음을 자식들에게 전할 때다.


딸내미는 이제 지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겪고 느끼고 깨달았기에 충분하다. 심지어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엄마랑 산책을 하고 등교한다. 퇴근길 우연히 킥보드 타고 가는 친구 옆에서 열심히 달리는 딸아이를 본 적 있다. 안 한다면 안 하는 딸이다. 고맙다.


"OO 이는 안 한다면 안 하는 아이니까요."


담임 선생님도 조금씩 달라진 딸아이에게 응원을 보냈다.


딸아이는 사복 입은 걸 지적해 삐딱하게 굴었던 선생님께도 일부러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시켰다고 다. 담임 수업에 지각한 날은 죄송다는 생각에 수업 시간에 나눠준 문제지를 (애들 다 자는 쉬는 시간에) 혼자 풀어 담임에게 다가갔다고도 한다. 선생님께 사죄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반항기가 있든 지각을 하든 한참 자라는 청소년 시기다. 아이들은 부모 선생님이 믿음과 사랑을 주며 다가가면 쭈뼛쭈뼛하더라도 받아들인다. 지만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면 비딱해지는 그런 때다.


아버지께서 30년 전에 베풀어 주신 넉넉한 마음을 자식에게 되갚는 삶, 가슴 벅차면서도 흐뭇하다. 자식을 믿으면 믿는 만큼 믿을 준다는 믿음이 있다.


딸에게 내 아버지처럼 쿨하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도 나와 안 맞는 선생님을 만나 억울한 일 많았다고. 친구들을 매우 좋아했고,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싶어서 환장했다고. 네가 치마를 댕강 줄였듯 아빠도 사재 교복을 몰래 입었다고. 공부도 안 하는데 그 정도 성적이면 아빠보다 훌륭하다고. 하지만 지각과는 앞으로 영원히 이별했으면 겠다고.


이 모든 게 다 성장하는 과정이고 경험이. 모든 경험은 스승이고 때로는 진짜 스승보다 바른 길로 안내한다.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활기차고 밝게 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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