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전 회사에 다닐 때 계열사를 이동 한 적 있습니다. A사로 옮겨 대리부터 과장 1년 차까지 3년 3개월 정도 다녔어요. 남자 직원만 92%의 딱딱한 조직문화도 그렇고, 특히 술자리가 너무 많아 이전 계열사로 다시 옮겼죠. (술을 잘 못 마시는 체질이랍니다)
복귀한 회사에서 6년 정도 다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직해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죠. 이직한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요.
최근 회사 근처 식당에서 우연히 A사에서 함께 일했던 임원을 만났습니다. 10여 년 만이었죠.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다른 회사 부사장님으로 이직을 하셨더라고요. 여전히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계셨습니다.
두어 달 뒤 커피숍에서 그분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서로의 근황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부사장님은 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겁나 빡쎄!?"
"네? 저요? 저희 회사요?"
"아니. 내가 일이 너~~무 많아. 너~무 힘들어."
"아! 저도요. 상무님, 저도 일이 겁나 많아서 너무 바빠요!"
"너도 그래? 확실히 A사가 일이 적당했어. 아니 좀 편했지."
"맞아요! 그때는 편한 줄 몰랐어요. 완전 공감합니다."
"파이팅! 하자."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의자에 앉으며 입가에 미소가 흘렀습니다. 지친 마음에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던 요즘, 묘한 동질감을 통한 위로를 받았달까요. 다른 회사에 다니고 직급도 한참 달랐지만, 잠깐이나마 같은 곳에서 일했던 동료애가 발휘된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을 공유하며 짧게나마 서로의 상황을 마음으로 공감했습니다.
같은 부문의 본부장님이셨던 그분의 온화한 미소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회식을 할 때도 늘 여유로웠던 모습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저 역시 많은 술자리를 여유롭게 누비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술 때문에) 몸은 좀 피곤했어도 마음에는 여유가 가득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는 일이 적당하다고 편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야근을 한 적도, 일 폭탄을 맞은 적도 없는데, 조금만 바빠도 '왜 이렇게 바빠!'라며 마음으로 짜증을 내곤 했죠. 당시에는 몰랐던 좋은 시절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말았네요.
이전의 편했던 시절이 그립고 이직을 후회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가벼운 대리시절이었으니 직급이 꽤 무거운 지금보다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중요한 일은 다만 자기에게 지금 부여된 길을 한결 같이 똑바로 나아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제가 택한 길이니 당연히 한결 같이 똑바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임원과 저의 서로의 '힘듦'에는 아마 세월 덕에 부여받은 직급의 무거움도 한몫 차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여유가 없던 지금 이 상황을 곱씹으며 누군가와 함께 그리워하지 않을까요.
우연히 만난 전 직장 동료? 덕분에 마음에는 잠시나마 여유가, 얼굴에는 살며시 미소가 스친 포근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