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2학기 초 광고대행사에 취직을 했다. 6개월의 인턴을 마치고 정직원이 될 무렵, 나보다 6살 많은 여자 팀장님 팀으로 들어가게 됐다. 팀장님은 성격도 밝았고, 업무도 적극적으로 많이 가르쳐 주었다. 특히, 내 작업 스타일도 좋아했고, 칭찬도 자주 해주었다.
또한 팀원들의 건강도 야무지게 챙겼다. 평소 야근을 많이하는 광고대행사 특성상 체력이 약해지기 일쑤라며, 회사의 복리후생(하지만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중 하나였던 헬스클럽 이용도 적극 권장했다. 덕분에 신입인 나도 팀장님을 따라 헬스클럽을 다닐 수 있었다. 강남에 위치한 곳이라 연예인들도 볼 수 있었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였다. 그러면서 팀장님과는 더욱 가까워지게 됐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팀장님이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 주말에 작업을 해서 보내겠다고 했다. 업무지시를 받고 퇴근 후 토요일에 일을 했다. 당시 컴퓨터가 갑자기 망가져 친구네 집에 가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다.
메일 전송 후,
한시름 놓고 일요일을 즐기고 있는 찰나에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OO야 이거 다시 해야 할 거 같은데, 오늘 회사로 나올 수 있니?"
"작업해서 웹하드에 올려놓고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바로 쓰게…"
정말로 헐~ 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에 가서 다시 일을 했다.
다음 날(월요일) 출근을 했는데, 팀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그거 다시 해야 되겠다. 잘 좀 하지 그랬어. 급하니까 빨리하자"라고 했다.
나의 주말을 통째로 바치며 일을 했는데, 또다시 하란 말을 들으니까 어린 마음에 화가 났다.
순간 욱!하며, 나는 다시 주워 담을 수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 저한테 일 시키지 마세요!"
황당해하는 팀장님의 표정, 그리고 흐르는 적막...
이른 시간이라 회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분 후 팀장님은 말을 꺼냈다.
"OO야, 그 파일 좀 줄래? 내가 손 좀 봐야겠다."
이렇게 나의 건방진 하극상은 조용하게 마무리가 됐다. 팀장님은 이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다시 언급하지도 않았다. 몇 개월 뒤 결혼을 한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제대로 사죄도 못하고 팀장님을 떠나보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리고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당시 한 팀에서 근무했던 동료의 결혼식에서 팀장님을 다시 만났다.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반갑게 맞아줬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먼저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거? 너무 서운 했지."
"남편한테만 얘기했어.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너무 고마웠다. 그제야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팀장님은 괜찮다며, 그저 너무 반갑다고만 했다.
팀장님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 자만해 있었고, 또 너무 잘해주시니까 주제 파악이 안됐던 거 같다. 신입 주제에 정말 가관이었던 거 같다. 주말에 친구네 집에서 노닥거리며 제대로 일을 했을 리 없었고, 일요일에 출근해서도 불평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시간에만 쫓겨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정작 나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고 착한 팀장님께 화풀이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욱! 하는 순간이 많다. 그런 순간을 참지 못하면 직장생활은 쫑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교훈은 얻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욱! 한다고 그 순간에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냥 내뱉지 말자' 분명 후회한다. 하고 싶은 말들을 꾹 참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 조절이 힘들 때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