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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29. 2016

장마철 악몽, 최악의 출근 패션

"내일이면 소중한 추억이 될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



삼성, SK, LG유플러스, 신한은행 등 반바지 출근을 허용한다는 기사가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업무 능률을 올리고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이런 기사를 볼 때면 10여 년 트렌드를 앞서갔음에도 불구하고, 반바지 때문에 개망신을 당했던 시회 초년병 시절이 떠오른다.


  때는 바야흐로 2005년. 장마철이면 꼭 생각나는 최악의 사건이다. 20대 시절, 사회생활 초년생의 잊지 못할 추억이랄까?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를 다니기 직전 대학원을 다니며, 모 경제지에서 1년간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순간의 실수로 하루 종일 직장에서 피가 마르도록 좌불안석했던 경험이다.


  7월의 어느 날. 비가 엄청 쏟아지던 출근길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몰아치는 비바람에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어버렸다. 이대로는 찝찝해서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반바지와 샌들로 갈아 신고, 쇼핑백에 긴 바지와 운동화를 챙겼다. 다른 사람들보다 평소 30-40분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빨리 가서 갈아입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비바람을 무사히 뚫고 전철에 올라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반바지의 편안함과 맨발의 자유스러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음악을 가슴으로 만끽했다. 어느새 따스함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 눈을 떠보니 지하철의 문이 열려있고, “서울역”이라는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시청에서 내려야 하는데, 한 정거장을 더 온 거였다. 깜짝 놀라 얼른 뛰어내렸다. 문이 닫히는 순간 선반 위에서 홀로 자고 있는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전철은 무심하게 떠나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초라한 남자 직장인만이 서울역사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정말 큰 고민을 했지만 이른 아침,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지하철 역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의 아름다움에 기가 막혔다. 비가 안 오니 내 모습이 더욱 한심해 보였다. 일단 회사로 가 책상 깊숙이 앉았다.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는 책상에 꼼짝 말고 앉아 있어야지…'라는 짧은 생각을 했다.


  한 30-40분이 지났을 무렵.

말 많은 우리 팀장님이 나를 찾는다.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네에……"


속삭이는 듯한 대답과 함께 나의 옷차림을 커밍아웃했다.


  "너 뭐냐?"


라며 어이없어하시는 팀장님. 주저리주저리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회사에 누가 반바지를 입구와!"


  고함치시는 팀장님 덕분에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에게로 집중됐다. 얼굴이 화끈하게 제대로 달아올랐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고, 오가며 마주칠 수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여 점심을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눈치도 없는 우리 팀장님… 나를 그냥 무작정 끌고 나갔다. 아니다 다를까 여기저기서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비) 웃는 사람들…


  그렇게 여느 때 보다 길고 길었던 하루가 지났다. 하루 종일 마주칠 때마다 한 마디씩 하는 팀장님도, 언제 물벼락을 쏟았냐는 듯 유난히 푸른 하늘도 원망스러웠다. 평소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런지 녹초가 됐다. 유실물 센터에 확인할 힘도, 찾아갈 힘도 없어, 그냥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마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신입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내일이면 소중한 추억이 될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이 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어려움에 봉착했다 해도 시간의 흐름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대부분은 나중에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니까.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던 간 큰 나의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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