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엄마가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새벽 3시에 사진 한 장과 함께 문자가 왔습니다.
"OOO 님 OOO 포토그레이에 지갑 놔두고 가셔서 문자 보냅니다. 선반 왼쪽 밑에 깊숙이 넣어놨어요."
인생네컷 무인점에서 한 손님이 지갑을 발견해 챙겨주었습니다. 포토그레이(인생네컷)에서 발견된 카드지갑은 제게 아닙니다. 전날 사진이 잘 나왔다고 자랑하던 딸내미가 주인입니다. 지갑 안에 있던 제 명함을 보고 문자를 남긴 거였죠.
딸내미는 수시로 무언가를 잃어버립니다. 학원비 결제하라고 준 제 카드뿐만 아니라 자기 체크카드, 교통카드도 수시로 잃어버립니다. 배송하는 아주머니가 "생년월일 08 XXXX 맞지? 지금 학교에 있지? 우편함에 넣고 갈게"라는 문자를 남길 정도입니다.
딸내미는 인생네컷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에어팟을 두 번이나 잃어버렸습니다. 이번에 잃어버린 카드지갑도 십만 원이 넘는 아까운 한정판 템.
"친구가 자기네 학교 근처라고 찾아다 준대요."
"다행이네. 주의 좀 해. 그러다 영영 잃어버린다."
퇴근길에 카톡이 왔습니다.
"친구가 가봤는데 없대요. 안 되는데 왜 없지."
딸아이 실망한 모습도 안타깝고 지갑도 아까워 다시 가보기로 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끌고 출발했습니다. 왕복 50분 거리. 가보니 사람이 바글거리는 시내 한폭판 이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았어요.
동네 슈퍼 가는 듯한 복장이었지만, 용기 내 들어가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제보자가 넣어두었다는 선반까지 들어내 꼼꼼하게 살피고 모자와 액세서리 보관함까지 후회 없이 뒤졌지만 없었죠.
밖으로 나와서 보니 유리 너머로 선반 아래가 다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그곳은 많은 사람이 앉아서 쉬는 곳이었습니다. 누군가 밖에서 발견해 가져간 거 같았습니다.
지갑 찾기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 딸아이가 잃어버린 카드들, 에어팟들, 카드지갑이 차례로 떠오르며 화가 꿇어 올랐습니다. 심지어 이 지갑은 딸아이가 얼마 전에도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적 있습니다. 제가 퇴근길에 여의도 역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걸 찾아왔죠.
제대로 한소리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오던 중 과거의 한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대학교 시절 금반지가 끼고 싶어 엄마를 졸라 엄마의 금목걸이를 얻어냈습니다. 녹여서 반지로 만들러 주얼리샵으로 가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나게 떠들다 보니 목걸이를 들고 있던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습니다. 목걸이는 온데간데없었죠. 왔던 길을 여러 번 훑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울상을 하고 다시 집에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셨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주워간 사람 횡제했네. 어쩔 수 없지. “
제 표정이 불쌍해서였을까요. 저 같으면 ‘엄마한테 목걸이 사주지는 못할망정 잘하는 짓이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거 같은데. 돌아가신 엄마의 관대함이 떠오르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그깟 명함지갑이 뭐라고. 더불어 제대하자마자 아빠를 졸라 얻어낸 어린왕자 금목걸이도 잃어버렸던 게 생각났습니다. (날 닮은 거였다니!)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딸아이가 돌아왔네요.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고. 카드 정지하고 학생증도 재발급 신청해. 다음부터는 주의하고."
옆에 있던 아들을 보니 갑자기 비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도 버즈 두 개랑 지갑도 두 번 잃어버렸네?"
"전 그 뒤로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어요."
"누가 뭐래? 속상하겠다고 말하려던 건데?"
"아, 네..."
전 엄마처럼 관대해지기로 이미 마음먹었거든요.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가 중요한 거니까요.
퇴근길 아내에게 PC 카톡이 왔습니다.
"핸드폰이 없어졌어. 이마트에 두고 왔나 봐. 다녀올게."
기가 막히게 제가 그 앞을 지나던 중이었네요. 아내 핸드폰을 찾아 돌아오며 가족 톡방에 "모녀가 똑같네"라고 남겼습니다. 모두가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죠.
딸아이의 카드지갑 분실 사건은 내 엄마의 관대함으로 희석되었고, 온 가족이 똑같다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저에 대한 반성과 자식에 대한 이해로 점철된 흐뭇한 일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더군다나 뇌가 팔딱이는 청소년들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또 초보 아빠는 아이들을 한번 더 이해하며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