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범 아들을 마음으로 열렬히 응원합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거든!"
가끔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늘어놓곤 합니다. 어리석은 상상이죠. 공부에 시달려 봤고 현재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던 어른들 말씀을 떠오릅니다. '정말이었다니!' 놀라운 다름입니다.
공부가 뭔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자식들이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부모의 기쁨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죠.
첫째 딸이 고1, 둘째 아들이 중 2입니다. 고등학생 딸은 공부의 참 맛(물론 쓴 맛입니다)을 알아가는 시기, 아들은 이제 막 시험을 접한 초보 시험러입니다. 딸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중이고, 아들은 아직 공부보다는 노는데 더 치중하고 있죠.
그래도 아들이 부모와 본인 모두 좌절한다는 중2 첫 시험 스타트를 잘 끊었습니다. 기대를 전혀 안 했기에 놀람과 기쁨이 컸죠. 심지어 자신이 생각해도 잘 받은 성적을 보면서 "올 백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들에게 저런 말을 들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특히 과학, 수학이 너무 재미있다고까지 하니 놀라울 뿐이었죠. <관련 글: 아들이 공부 못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만>
아이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고딩 딸은 이제 시험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아들은 슬슬 공부를 시작해 볼까 하며 호기롭게 "아빠 국어랑 과학 문제집 주문해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게 순탄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들이 선언했습니다.
"이번에 과학은 그냥 포기하려고요."
(뜬금없는 말에, 인생을 포기해라 인마!라는 속마음을 숨기고) "왜? 갑자기?"
"아니, 쓸데없는 걸 다 외워야 해요."
"무슨 내용인데?"
"소화기 관련된 건데, 용어도 어렵고 다 외워야 하는 거라. 전 외우는 건 못하겠어요."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과학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한번 더 했습니다. 1학기 때는 계속 100점 맞았던 과목인데 말입니다. (너무 재미있다며?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거니?)
며칠 전 슬쩍 물어봤습니다.
"이번에 시험 몇 과목 봐?"
"국, 영, 수, 과요."
"과학은 아직도 별로야?"
"그냥 그래요."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들을 성공하게 한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아이들 생활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부시키기가 목적이 아닌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지내기 위한 관심이죠. (입으로는) 공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열심히 할 뿐이죠!) 그저 알아서 하게 두고 응원할 뿐입니다.
연휴에 돌입했습니다. 딸아이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스카에 다니고, 아들은 주말 내내 스마트폰과 컴퓨터, 닌텐도만 붙잡고 있네요. 알아서 하겠지요. (해야 할 텐데, 하겠죠?)
일요일, 시험대비로 학원 보강을 가며 아들이 말합니다.
"학원 갔다가 스카 들렀다가 올게요."
(오, 웬욜) "너무 늦게까지 있지는 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전합니다)
스카에 다녀온 아들이 말했습니다.
“국어도 망했어요. 문법이 너무 어려워요! “
알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이 날 이후부터는 손을 쭉... 놓고 있답니다. 공부하기가 점점 싫어지는지 오늘 아침에는 "시험 못 볼 때도 있어야 성장하는 맛이 나죠!"라고 당당하게 말하네요.
오락가락 우리 아들, 그나저나 자신이 틈틈이 폭탄 발언을 했다는 걸 기억할까요. 아, 1학기 때도 아들이 일본어와 역사 포기한다고 했던 말이 방금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상습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과학을 포기하든 국어를 망하든 마음에 진심을 담아 아들의 학창 시절을 열렬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