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말 흘리지 않고 귀담아 들어줘서 고마워“
아이들에게 관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분노에 휩싸인 급발진을 자제하고, 화를 식힌 후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아이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평일에는 저녁에나 얼굴을 잠깐 보고, 주말에도 아이들이 바빠 아침, 저녁에나 만나니까요.
자주 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훌쩍 커가는 게 아쉬워 늘 '잘해줘야지'라는 다짐을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잘 지키는데, 마음이 자꾸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이 사종일관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을 때입니다.
딸내미는 중학교 때까지 하루 3시간 사용 제한을 지켰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율에 맡겼죠. (그런데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수업 전에 폰을 걷더니 고등학교 때는 걷질 않네요. 무척 아쉽습니다) 중2 아들도 누나의 선례를 이어받아 하루 3시간 사용 제한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가 있습니다. 아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닌텐도를 번갈아 한다는 겁니다. 평일 저녁 즈음에 폰 시간이 다 되면 컴퓨터로 게임을 합니다. 물론 컴퓨터도 하루 2시간 락을 걸어놨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폰 게임을 하지 말고 차라리 큰 화면으로 하라는 의도였죠. 더불어 숙제할 때도 필요하니 열어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은 화면이 달린 닌텐도 본체. 작년 아들 생일 선물로 사준 게 화근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화목하게 게임하는 모습을 상상했거늘. 아주 잠깐 모여 테트리스나 조금 했네요. 닌텐도 본체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휴일이나 주말 아들의 루틴은 일어나자마자 폰을 붙잡고 뒹굴고,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고, 저녁에는 닌텐도 본체를 붙잡고 누워있다 잠이 듭니다. 평소 주말에 반나절은 나가서 운동을 하더니 요즘은 운동하는 시간이 부쩍 줄었습니다.
연휴와 주말이 겹친 날, 하루 종일 스마트폰, 게임, 닌텐도(유튜브)를 붙들고 있는 아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에 스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욱’ 하는 마음을 잠시 억누르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식탁에 혼자 앉아 닌텐도를 끼고 시리얼을 먹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스마트폰 3시간 제한 둔 건 자제할 줄 아는 습관을 들이라는 건데, 폰 하고 게임하고 닌텐도로 유튜브 보고 그러면 폰 시간제한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말똥말똥 약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조건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고,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하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네."
화를 내던 좋게 말하던 잔소리는 아이들 표정을 굳게 합니다. 저는 방에 들어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잠시 뒤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가다가 아들 방을 힐끗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난데없이 책을 읽고 있네요. 아빠가 잔소리했다고 보란 듯이 책을 읽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짠했습니다.
보통 부모가 한소리 하면 반항심이 생길 텐데. 공부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공부 좀 해!' 다그치면 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빠 말을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실천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우리 아들 순수하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날 저녁 딸아이와 산책하며 아들 얘기를 했습니다.
"걔는 어떻게 그래요? 진짜 웃기네요."
"귀엽잖아. 순수한 거지."
딸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방에 들어가 문 닫고 스마트폰이나 만지작 거렸을 것입니다. 문득 아들이 제 생일날 편지에 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말 하나하나 흘리는 거 없이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가 항상 저한테 잘해주시는 만큼 저도 잘해드리도록 노력할게요."
아들이 제가 느꼈던 마음을 저도 아들에게 느꼈습니다. 이런 게 윈윈일까요.
"아들도 아빠 말 흘리지 않고 귀담아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
오늘도 아이들과 마찰과 잡음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평온한 하루하루가 모이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욱 견고해질 거라 믿습니다. 더불어 평소 내가 잠깐 보는 아이들 모습이 다가 아니기에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의심하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