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겠다는 마음'
고1 딸내미가 여름이 지나기 전에 워터파크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수시로 드나들던 워터파크인데, 2년 정도는 잊고 살았네요. 8월 말 바쁜 아이들 일정을 쪼개 1박 2일, 속초에 있는 워터파크에 다녀왔습니다.
아뿔싸! 떠나기 전 날 밤 아들의 래시가드, 구명조끼, 아쿠아 슈즈가 한없이 작다는 걸 알았습니다. 초등학생에서 어느덧 중2가 되었으니까요. 새벽 배송도 어려워 일단 워터파크에서 구매하는 걸로!
토일월 2박 3일로 가고 싶었지만, 학원 빠지면 피곤해진다는 아이들 의견에 따라 일, 월요일 여행을 택했죠. 심지어 딸내미가 월요일에 학원에 가야 하니 5시 전에는 귀가해야 한다고. 이런 기특!
학원 일정 없는 일요일에 출발해 속초에 있는 온천 테마파크에 도착했습니다. 아들 마음에 드는 래시가드가 없어 아쿠아 슈즈만 구매하고 저의 래시가드와 구명조끼를 아들에게 양보했습니다. 저는 여벌로 싸 온 초라한 나시와 더 초라한 대여용 (낡아 너덜너덜한) 구명조끼를 입었죠.
"너 때문에 아빠 너무 없어 보이잖아."
딸내미가 초라한 제 모습을 비웃으며 동생에게 핀잔을 줍니다. 8월 마지막 주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덧 초라한 나시와 너덜너덜한 구명조끼를 입은 중년 아저씨가 되었지만, 마음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아이들과 아찔한 워터 슬라이드도 타면서 신나게 즐겼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스파밸리, 다양한 온천이 10여 개 모여 있는 핫플이죠.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누비다 마지막 코스로 스파밸리에 들렀습니다.
스파를 반쯤 돌았을까.
폭포수가 쏟아지는 공간을 지나가는 아들 뒷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들이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돌계단에 부딪혔습니다. 난데없이 울려 퍼진 '쿵'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달려가 아들을 일으켰습니다. 아들은 괴로움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들이 크게 안 다쳤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 아들을 꼭 안았습니다. 의무실에 들렀다 객실에 들어갔습니다. 아들 곁에 꼭 붙어서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어찌나 불안하고 안쓰럽던지.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들~ 괜찮아? 어지럽거나 메슥거리지는 않아?"
"네, 괜찮아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치킨이요?" (치킨을 바로 시켰습니다)
"뭐 필요한 거는 없어?"
"아빠의 사랑이요."
후두부에 벌거스럽게 혹이 났습니다. 무사한 아들이 갑자기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옆에 꼭 붙어서 귀찮게 했더니, 이제 사랑이 넘치니 저리 좀 가라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곁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걸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가족을 대할 때 오늘이 마지막인 거처럼 대하라는. '어떤 책이었더라'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리뷰 해두었던 글을 뒤져 찾아냈습니다.
오늘 집을 나오기 전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어 떤 말이었나요?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말이었나요? (중략)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하는 말이 가깝다고 더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원래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받는 관계가 가족관계입니다. (중략)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이 비난과 실망의 말이라면 너무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한 번 더 내가 던지는 말을 생각해 보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후략)
십수 년 전에 읽은 책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에 나오는 글입니다. 마음에 크게 와닿아 적어 놓았는데, 한참 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아들 사건을 통해 다시 떠올랐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자식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학원까지 마치고 귀가하면 제 방에 들어와 인사를 합니다. 요 며칠 "오늘도 무사히 잘 돌아와 줘서 고마워"하면서 안아주었습니다. 아들은 웃으면서 "네~"하고 사라집니다. 딸내미도 취침해야 할 시간에 제 방에 들어와 자리 잡고 이런저런 고민을 쏟아냅니다. 피곤할 때도 있지만, 건강하게 조잘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출근을 위해 11시에 누웠는데, 학원에서 막 돌아온 남매가 토스트가 먹고 싶답니다. '냉장고에서 간식 꺼내먹어!'라는 말대신, 벌떡 일어나 빵을 굽고 잼을 발라 토스트를 '짜잔'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시 누웠는데, 아들이 체험학습에 붙일 사진을 출력해 달라고 합니다. '내일 출력해'라는 말대신, 벌떡 일어나 기분 좋게 '짜잔' 출력을 해주었습니다. 그저께는 11시가 넘은 시간에 중2 아들이 보드 게임을 하자고 했습니다. 내일(금요일)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30여분 정도 함께 놀았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요)
최근 <"자식 사랑이 가장 강렬"…뇌에서 '사랑의 강도' 찾는다>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느낄 때 뇌의 활성화 정도를 관찰한 결과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가장 강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입니다.
놀라운 결과는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기사로 확인했을 뿐이죠. 그렇다고 마음처럼 무한 사랑을 베풀며 살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놀라고 속상하고 괜찮아지면 안심하면서 자식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맹목적인 사랑' 자식을 낳고 처음 체감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그 마음은 결국 사랑으로 치유되곤 하니까요.
아들이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후유증 없이 잘 지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화가 날 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잘해주고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작은 경험을 통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중년의 아빠는 오늘도 아이들을 통해 사랑을 배우며 한 뼘 더 자라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