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너라도 제발 성공해라"라는 딸의 마음
"국어 49점, 오늘부로 잠적할게요"라는 말이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 부모님의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저도 고수해보고 싶었어요. 부모가 반복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처한 현실과 주변의 압력을 충분히 직시하고 있을 테니까요.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당황했습니다. 중학교 때처럼 설렁설렁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거죠. 입학도 전에 수학에 치여 스트레스를 만땅 충전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학 선행을 1월 말에 시작했답니다) 수학 괴로움에 학업에 흥미를 점점 잃어갔죠. <관련 글: 수학 선행 안 시켜서 망했다던 고딩 딸의 반전>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 어떻게 이렇게 살아요?" (놀라는 표정으로)
고등학교 2, 3학년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와 비슷한 패턴(대충, 설렁, 잦은 외출)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첫 중간고사를 맞았죠. 시험 기간에는 학교와 학원 선생님의 으름장(이렇게 하면 대학 못 가!)이 원동력이 되었는지 스카까지 다니며 바짝 공부를 하더라고요.
결과는 예상과 달리 성공적이었습니다. 평균 1점대 등급을 받아버렸거든요. 딸도, 친구들도,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학원 선생님도 모두 놀랐다고. 갑자기 공부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거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기대를 심어줬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성적은 지필시험과 수행평가가 어우러져 최종 결과가 나옵니다. 지필이 부족한 학생은 수행을 꼼꼼하게 챙기죠. 반영 비중이 높아 만회할 수 있거든요. 물론 반대로 말아먹을 수도 있고요.
딸내미는 중학교 때 지필시험 100점을 받고 최종 B를 받은 전적이 있습니다. 수행을 제대로 안 챙긴 덕이죠. (수행 보는 걸 깜빡했어요!) 과목 별로 다르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일(깜빡했어요!)이 발생했습니다.
"수행 진짜 하기 싫어요. 도움도 안 되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처럼 필기를 만점 받고 수행을 잘 안 챙겨 성적이 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딸내미는 학기말 결과에 만족했습니다. (체험학습을 내고 제주 여행을 갔을 때, 선생님이 카톡으로 보내준 최종 성적표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는 걸 먼발치에서 목격했거든요!)
딸이 고등학생이 될 때 아들은 중2가 되었습니다. 첫 지필 시험과 맞닥뜨리는 시기죠. 아들과 공부를 연관 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본인도 부모도 학원 선생님도. 하지만 아들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반전을 선사했습니다. <관련 글: 아들이 공부 못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만>
"너라도 제발 성공해라. 아무도 나한테 관심 안 갖게! “
아들 성적을 보고, 동생에게 별 관심 없던 누나가 진지하게 던진 말입니다. 이 말에는 축하한다, 잘했다는 의미를 넘어선 묵직한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딸이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말을 스치듯 흘린 적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제발 관심 좀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목표를 선생님이 정해버려요."
딸은 입학을 고작 한 달 반 남기고 수학 선행을 시작해 고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학원 열등반에 들어가 진도 빼느라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도 남들보다 두어 시간씩 학원에 일찍 가서 공부해 꼴찌반 1등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나름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딸이 감당하고 있는 무게에 타인이 난데없는 기대를 자꾸 얹으니 버거움을 느꼈나 봅니다.
"전 조용히 혼자 알아서 하고 싶어요."
자신에게 건 기대에 대한 실망은 본인의 몫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건 타인의 기대에 대한 실망 대상은 (기대해 달라고 말한 적 없는) 아이들 몫으로 돌아갑니다. 기대는 지렛대와 같습니다. 마음대로 쉽게 들어 올리고 실망과 함께 쉽게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원치도 않는 기대에 대한 가혹함을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제가 중1 때 반에서 (놀랍게도) 2~3등을 유지했습니다. 담임은 성적표에 "좀 더 노력해 전교 10등 안에 들도록 합시다"라는 기대를 적었어요. 저는 학창 시절에 전교 10등 안에 단 한 번도 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점점 성적이 떨어졌죠. 중학교가 끝나갈 무렵 스스로 공부를 못한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기대는 선생님 몫, 실망은 제 몫이었죠.
부모 마음은 더 각박합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협박하고. 부모의 기대에 대한 실망도 부모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대도 실망도 혼자 하는 짝사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누구도 그러라고 한 적 없는데 말입니다.
딸아이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는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랐습니다. 중 3 때 성적표 통신란에 담임이 (부모님께 혼나라는 취지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 말을 적어 주셨는데, 아버지께서 "공부 안 한 거에 비해 훌륭한 성적입니다"라는 답글에 담임이 당황한 적 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입니다. 집에서라도 부담 한 스푼!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죠. 부모가 부담을 안 줘도 학교에서 학원에서 그리고 시험기간이 되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그렇다고 자식에게 기대를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듬뿍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식들한테 들키지 말아야 할 아빠의 속마음) 겉으로, 꾸욱 참으며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입니다. 공부를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 칭찬과 응원 아닐까요. 기말고사를 본 날 딸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국어 49점, 오늘부로 잠적할게요"
(중간고사에서 국어 100점을 받았던 딸이) 이 놀라운 점수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주었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부담 주지 않는 아군처럼 느껴져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착각은 자유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