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간 의심과 믿음은 한 끗 차이입니다"
갓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 자식이 최고인 줄 알 때가 있습니다.
'엄미!', '아빠빠빠!'
옹알이만 해도 '우리 애 천재 아니야?'라고 감탄할 정도로 말입니다. 자식이 둘 있지만, '첫째 딸 최고!'라며 살았습니다. 딸내미가 어릴 때부터 참 똘똘했거든요.
"아빠는 맨날 누나 편만 들고 누나만 좋아하잖아요!"
5학년이었던 아들이 절규한 적 있습니다. 둘 다 똑같이 사랑하지만, 딸에게 약간 기울었던 때가 솔직히 있었어요. (미안! 아들)
어릴 때부터 딸내미는 야무졌습니다. 사람 많은 인파 속에서 유치원생 딸을 잃어버린 적 있습니다. 딸아이는 배운 대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아 금방 찾았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아빠를 잃어버린 아들은 온 마트를 휘젓는 통에 찾는데 애먹었던 추억도 있죠. (어린 시절의 저처럼)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천방지축 초딩 아들이 걱정돼 일부러 반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 매 순간 뭘 해도 걱정되는 개구쟁이였죠. (지금 생각하면 이 모습조차 너무 그립고 사랑스러운데, 그땐 몰랐네요)
운동도 악기도 공부도 척척해내는 딸과 달리 아들은 피아노도 기타도 금세 포기했습니다. 운동은 좋아하고 잘했습니다. 수영, 축구, 농구, 태권도, 특공무술, 복싱 등등을 열심히 했죠. 지금도 운동 마니아고요.
딸은 공부도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는 모두 '매우 잘함'. 초딩 때는 기본이라고 여겼죠. 근데 아들 성적표에는 '잘함'과 '보통'도 보이더라고요. (성적지상주의 아빠라서 미안) 그렇지만 애들에게 성적을 가지고 잔소리한 적은 없습니다.
아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누나와 같은 수학, 영어 학원에 다녔습니다. 공부하기 싫어 늘 징징댔고, 빨리 나가 놀고 싶어 씩씩거리면서 문제를 풀었다는 목격자도 있습니다. (목격자는 누나!) 아무튼 공부를 참 싫어했습니다.
딸내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시험 본 날에는 묻지 않아도 가족 단톡방에 점수를 올렸어요. 자식이 시험 잘 보면 부모는 내 일처럼 기분이 좋잖아요. (기대 안 하던 제가 시험 잘 봤을 때 좋아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기쁨을 몇 번 못 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과정을 단톡방에서 지켜보던 6학년 아들이 어느 날 선언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공부는 못할 거 같아요. 다른 거 할래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좋아하는 거 하면 되지. OO이는 운동 잘하잖아!"
누나 때문에 부담이 돠었을까요. 공부에 뜻 없다는 아들 뜻을 존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회장도 하고, 선생님께 반항도, 찍히기도 하면서 학교생활을 스펙타클하게 이어갔습니다. 어느덧 첫 지필고사를 보는 중2가 되었지요.
중2 아들이 갑자기 학원을 옮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파트 상가 작은 보습 학원에 누나와 함께 다녔거든요. 딸이 고등학생이 돼 학원을 옮기니 자기도 옮긴다는 것이었죠. 심지어 영어 학원은 주말반, 수상했어요.
아들은 누나가 그랬듯, 고등학교 전 까지는 주말에 절대 학원에 안 다닐 거라고 했거든요. 주말에 친구들하고 학원에 모여서 놀고 싶어서 저러나 했죠. 어쨌든 공부하겠다니 믿고 학원을 옮겨주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시험공부한다며 스카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딸아이는 고등학생이 돼서 스카에 처음 갔는데, 아들은 왠지 친구들하고 놀려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목격자가 있습니다. (목격자는 역시! 스카에서 아들 일행 근처에 앉은 누나입니다. "애들 가방만 놓고 나가던데요?")
"아빠 학원에서 다른 학교 수학 기출 시험 봤는데, 100점 받았어요."
"오~ 그렇구나! 짱이네." (설마... 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아들 말을 의심했습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들이 중1 때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첫 번째는 96점, 두 번 째는 76점이었거든요.
아들 말로는 체험학습 때문에 학교 빠져서 자기만 따로 봤는데, 빨리 놀고 싶어서 15분 만에 대충 풀어서 그런 거라고.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참 별로인 말이잖아요. 제 기준에 두 번째 시험이 아들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자랑 주의>
얼마 뒤 학교에서 생애 첫 중간고사를 보고 아들이 단톡방에 점수를 올렸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4과목에서 3개밖에 안 틀렸다고. 점수들이 하늘을 찌르듯 날아다녔습니다.
'설마...'
이때까지도 왠지 아들의 허세가 가미되었을 것 같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아들, 미안) 며칠 뒤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정말이었습니다. 수학은 100점이더라고요.
기말고사 때도 국어, 수학, 과학은 100점. 나머지 주요 과목도 몇 개 틀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는 아들이 맞나 싶어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그동안 아들의 노력을 보지 않았네요. 아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학원에서, 스카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말입니다. 학원 선생님 말로는 이해도 빠르고 수학을 잘한다고. 시험을 잘 보니 본인도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저는 수학이랑 과학이 너무 재미있어요. 완전 이과 체질이에요."
최종 성적표를 보니 음악과 기술가정이 B더라고요. 음악은 리코더 수행에서 삑사리가 너무 많이 났다고. 초등학생 때도 리코더 때문에 고전한 전적이 있죠. ("어떻게 리코더를 못 불지?" 누나가 옆에서 비아냥 거립니다)
기술가정은 수행시험 보고 시간이 남아서 잤는데 침이 흘러 답안지가 지워져서 망쳤다고. 또 김밥 만들기 수행을 봤는데, 썰다가 다 터져서 망했다더군요. 이런 어설픈 모습이 더 제 아들 같은 매력입니다.
중학교 첫 시험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아들이 기특합니다. 앞서 솔선수범한 딸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험기간에 누나한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고, 누나는 구박하면서도 풀어주는 모습이 흐뭇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과와 과정이 모인 나중의 결과도 물론 중요하겠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온 과정도 매우 소중합니다. 아이들이 각양각색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쑥쑥 자라는 흔적이니까요. 아이들을 지켜보며 부모는 희로애락을 느끼고 또 함께 자라납니다.
기대 이상으로 사춘기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워 틈틈이 마음을 전하곤 합니다. 아빠는 너희들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다고. 노력한 흔적, 수시로 전해준 유쾌한 기분을 평생 간직할 거라고. 지금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자녀와의 관계는 작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딸아이는 전적으로 믿었는데, 아들에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커가면서 눈에 띄게 점잖아지고 있습니다. 대화도 자주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아가고 있죠. 서로 믿고 신뢰하기 시작하니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요. (앞으로 더 큰 우여곡절이 기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잠시 숨 고르기 하며 즐기는 중입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빠는 마음의 키가 조금 더 자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