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때이지만, 연애도 할 나이니까요!"
11시경 다음 날 출근을 기약하며 침대에 누웠습니다.
'딸랑딸랑'
중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딸내미가 제 방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기말고사 후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네요.
"국어 평균이 30점이래요! 말이 돼요? 국어 때문에 아주 잠적하고 싶었어요."
중간고사에 국어 100점을 맞았는데, 기말고사에 49점을 받은 딸내미는 분노의 화살을 국어 선생님께 돌리다 주제를 바꿉니다.
"나 2학년 선배 두 명한테 고백받았어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요."
"니가 왜 좋다는데? 축구 잘해서?"
중학교 시절에는 전학 가자마자 회장에 출마해 당선될 만큼 당돌하고, 체육대회 때 앞에 나가서 춤을 출 만큼 외향적이었던 딸내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조용해졌습니다.
"이제 앞에 나서는 게 너무 싫어요! 고등학생 때는 조용히 살 거예요."
학기 초 새로운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조용히 살던 딸내미는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학교 가는 낙은 체육시간에 하는 축구였죠.
"체육시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여학생들이 직접 하는 축구를 즐길 리 만무합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태권도 도장에 다니는 딸내미입니다. (곧 2단 승급 심사를 앞두고 있을 정도죠) 학교에서 축구를 할 때 날아다닌다고 하네요. 덕분에 학교 체육대회에 고등학교 1학년 대표로 뽑혀 1, 2학년 연합 경기에 출전하였습니다.
유독 눈에 띄는 경기를 펼친 덕분에 인스타 팔로워도 늘고, 모르는 선배들한테 DM도 받으며 한순간에 유명해졌다고. 체육대회 때 딸아이를 눈여겨보던 선배 두 명이 딸아이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한 명은 체육대회 끝나자마자 DM 보낸 선배인데, 제 친구가 좋아해요. 그리고 주변에 여자가 많데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여자 많다면서요? '다 들었어요'라고 했더니 당돌하대요."
"정말 당돌하네. 잘했어."
"그리고 한 명은 OO 동아리 선배인데, 인기 많아서 제가 만나기라도 하면 여자애들 관심 대상 될 거 같아서 싫고요."
"잘했네! 오빠들 조심해야지!"
제가 보기에는 전 남자 친구에게 미련이 남은 듯합니다. 최근 이별 후 다신 연애 안 한다고 선포를 한 딸내미인데, 여기저기서 들쑤시니 불안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선배와 만나면 어울리는 무리의 연령대가 높아질 테니 더 걱정이 되겠죠.
얼마 전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도 딸내미는 밤늦게까지 선배와 DM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거절했다며? 계속 집적거려?"
"아뇨. 연애할 생각 없다고 정확하게 말했어요."
아무도 안 만나기로 했다는 결론. 하지만 비슷한 상황 속에서 늘 남친이 생겼던 딸이기에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친이 생겼고 중학교 때도 끊임없이 남친을 사귀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조금 쉬어가도 좋으련만.
'지금이 공부할 때지 연애할 때야? 대학 가서 해도 안 늦어! DM 할 시간에 공부나 해!'
라고 속으로만 조용히 외치고 있습니다. 당연히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 일이니 입을 꾹 다물고 귀와 마음만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당신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의 방송인이자 소통의 달인 래리 킹의 말입니다.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어른의 말만 강조하면 아이들에게 부모의 말은 쉬이 도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꼭 해야 할 말이 많기 때문에 평소 경청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학창 시절의 연애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었으니까요. 물론 순수하고 건전한 교재였어요. 학업에 방해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집, 학교, 교회, 도서관만 오가는 연애였어요) 학창 시절 연애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경험입니다. 딸아이가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딸내미와 남학생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이런! 출근해야 되는데...' 그래도 고등학생 딸이 고백받은 이야기, 남자 애들 이야기, 연애사를 아빠에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놔 주니 고맙습니다.
제 말을 아이들이 잘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아이들 말에 항상 귀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