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잔소리 줄이면 벌어지는 놀라운 일
"감정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잔소리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이 악물고 참는 부모는 있어도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합니다. 잔소리는 결국 덕담이고 조언이고 인생을 좀 더 살아온 인생 선배의 경험담이지만, 아이들은 불필요한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시절 아버지께 많이 혼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다 혼날 일이었죠. 예민한 아버지였지만 훈육에 있어서는 이성적이었습니다. 신문지를 종아리에 대고 그 위를 회초리로 때리셨어요. 잘못한 것만 알면 된다는 취지였죠. 두꺼운 솜바지 위에 매를 대기도 해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행이었지만 역효과도 있었죠. 누나와 아픈 척 연기를 펼치다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지기도. 또 혼나고.
잔소리 들을 일이 별로 없었던 누나와 달리 저는 아버지께 많은 훈계를 들었습니다.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섣부른 감정을 배제한 진심 어린 아버지의 조언이자 걱정이었죠. 제가 자라는 동안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잔소리를 들을 때면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언제 끝나지?', '친구들 기다리는데 늦겠네...' 등 잡생각은 이어지는 시간과 비례해 늘어났죠. 아버지께서는 가끔은 장문의 편지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따듯한 의도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죠. 읽는 둥 마는 둥. (죄송합니다)
최근에 친구가 6학년 딸에게 화를 꾹 참고 한참을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흥분해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이 웃겨서 그랬다고. 역시 잔소리든 훈화든 연설이든 길어지면 역효과라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잔소리를 글로 예습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칩니다. 머리와 입 안에서 항상 맴돌지만, 섣불리 내뱉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처럼 듣기 싫은 마음도 십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안 한다면 아빠의 직무 유기겠죠. 분노가 피어나면 내적으로 심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충분히 내면과 싸움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내놓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잔소리에도 '노하우'를 담으려 노력하죠. 일단 화가 나면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정도 후에 이야기를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 잘못은 사라지지 않지만, 절정에 치달았던 분노는 충분히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반복되는 잘못을 저지를 때 더욱 화가 나죠.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도 똑같은 잔소리를 듣는 것도 모두에게 곤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아이들이 중1, 중3일 때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져 귀가 시간을 정하고 좋은 말로 많이 타일렀습니다. 태권도가 오후 10시에 끝나는데, 11시가 다 되는 시간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죠. 늦게 들어와 엄마와 한바탕을 벌인 다음 날, 아이들이 연락도 없이 또 늦었습니다. 둘 다 배터리가 방전 돼 휴대폰도 꺼져 있었고요.
걱정되고 초조했습니다. 11시 반 정도에 들어와 인근 아파트 야시장에 다녀왔다고. 작심삼일도 아니고 전날 한 약속도 지키지 않은 아이들에게 화가 치솟았습니다. 막말을 쏟아내기 직전, 씻고 난 후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메모장에 딸, 아들에게 해야 할 말의 요점을 적어놨습니다. 중언부언 말이 길어져 아이들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도록 '짧게 끝내자'라고 다짐했죠. 우선 잘못한 내용을 요약해 전했습니다. 다음번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룰도 정했어요.
마무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억울함이 있을지 모르니 아빠가 오해한 부분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잘못을 인정했고, 둘 다 일주일 동안 오후 8시 부(초등학생부)에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착각일지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요점만 담은 짧은 잔소리. 메모장을 힐끗 보면서 잔소리하는 제 모습이 웃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래! 감정적이지 않게 잘했어!'라며 스스로 마음에 위안을 얹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침착하게 타이른 다음 날 아이들은 "어젯밤에 아빠가 난데없이 화를 냈어요!"라고 요약해 엄마에게 전했다는 걸 들었습니다.
결국 엎어치나 매치나 아이들에게는 잔소리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무감각해지고 싫은 소리를 매번 듣기 싫은 게 사람 아닐까요. '아빠의 난데없는 화'는 서운했지만,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나름 잘 타일렀음에 스스로 만족하며 서운함을 삼켰습니다.
그래도 혼난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아빠를 찾는 아이들을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잘못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가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 그대로 전할 때도 있었고, 참고 참다가 한번에 터뜨린 적도 있었어요. 화내는 아빠 앞에서 보이는 아이들 눈물은 잘못을 뉘우친다기보다 무서운 감정이 더욱 컸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아들은 중2, 딸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 감정이 더욱더 예민하게 요동칠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잔소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동 전문가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진정한 마음을 안다면 세상의 어떤 부모도 아이를 오해하지 않아요. 아이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에 큰 힘을 얻어요"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길 원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잔소리가 더 늘어만 가는 게 아닐까요.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수십 년 전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아이들도 시간이 흘러야 아빠의 진짜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재촉하지도 다급하지도 않아야 자녀와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화를 참고 메모해 잔소리하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기분의 태도로 화를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감정을 빼고 친절하게 차근차근 얘기하면 아이들에게 더욱 잘 전달됩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화를 제거하니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늘었고, 아이들도 쉽고 편하게 제게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아빠는 잔소리 노하우를 업그레이드하며 오늘도 아빠라는 직업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 나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