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100만 원 벌었대요" 설날이 두려운 부모들

청소년들이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명절은 아니기를

by 이드id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한 영상을 봤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아들 집에 잠시 머물던 할머니가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이가 하루 종일 할머니를 찾으면서 울고, 할머니 냄새가 나는 옷을 끌어안았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면서 짠했습니다.


아이의 눈물에서 곧 다가올 설 명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명절은 원래 이런 장면이 펼쳐지던 시간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오랜만에 친척들과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짐이 아쉬워 서운하고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중한 다음 만남을 기약했죠.


숫자로 설명되는 설날의 모습


카카오페이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이 설날에 받은 세뱃돈 금액 중 ‘10만 원’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즘의 설은 조금 다른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카카오페이가 설 연휴 송금봉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중고등학생이 설날 송금봉투로 받은 세뱃돈은 10만 원이 가장 많았습니다. 카카오페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설날 가장 부담스러운 요소 1위로 '세뱃돈 및 각종 경비'를 꼽기도했습니다.


세뱃돈이라는 피할 수 없는 비용은 명절의 온기를 낮추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지출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죠. 모바일 송금 건수와 평균 금액 등이 언론에 노출되고, 미디어에서는 '설날 세뱃돈으로 얼마가 적당한가요?'라는 등의 설문조사 결과가 매년 쏟아집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은 각각 얼마가 적당한지 정리한 게시물과 네티즌들의 설전 또한 반복됩니다.


세뱃돈은 원래 덕담의 부록이었지만, 이제는 청소년들에게 명절의 메인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평균 금액과 적정 단가가 기사 제목이 되는 순간, 세배는 웃어른에 대한 존중과 건강 기원 등을 담은 의례가 아닌 일종의 거래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세뱃돈이 오른 것 자체를 사회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물가가 오르면 용돈도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니까요. 다만 그 변화가 아이들 기억 속 명절의 의미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뱃돈'


고등학생 자녀 둘을 둔 학부모이자 평범한 직장인 입장에서 '적정 세뱃돈' 등과 같은 데이터는 씁쓸한 정보입니다. 교육비와 생활비 등으로 가계 경제가 빠듯한데, 자녀들, 조카들 세뱃돈까지 챙기다 보면 명절은 넉넉한 마음보다 부담스러운 날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설 보너스가 따로 나오는 회사도 아니고, 2월에 연말정산으로 상당량의 세금을 뱉어내야 하는 상황이라 체감 부담은 더 커집니다. 설은 새해의 시작이지만, 어떤 가정에는 빠듯한 달이 되기도 합니다.


세뱃돈의 흐름은 결국 부모들 사이에서 오가는 교환에 가깝기도 합니다.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조카에게 가고, 조카 부모의 돈은 우리 아이에게 옵니다. 또래 자녀를 둔 친척끼리는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가 반복되는 셈입니다.

명절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런 고민 자체가 낯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 설은 그저 휴일이거나 연휴일 뿐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경험하는 비교와 경쟁의 장면만큼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OOO은 세뱃돈으로 100만 원 벌었대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아이 친구는 친척이 많아 세뱃돈을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50만 원, 70만 원을 받았다는 친구들도 주변에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설날의 의미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기억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친척 수와 그들의 경제력이 곧 세뱃돈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총액은 아이들 사이의 비교와 경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처럼 친척이 많지 않거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은 명절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세뱃돈을 관리했지만, 10대 중반부터는 그 빈도가 점점 줄어듭니다. <'세뱃돈 맡아준단 말 못 믿어'… 청소년 81% "직접 관리"> 작년 설 연휴 기간에 보도된 한 기사의 제목입니다. 만 14∼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명절 용돈이 아니라 또래 집단 내 세뱃돈 빈부격차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설날, 세뱃돈에 담긴 의미


'세배(歲拜)'는 설날 아침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절을 올리며 새해 인사를 드리는 전통 의례입니다. 이는 어른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 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배를 받은 어른은 덕담을 건네고, 답례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이어져 왔습니다. 세뱃돈은 이러한 의례 속에서 함께 전해지는 관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물론 세뱃돈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집 형과 누나, 고모네 식구들을 만나는 게 더 즐거웠고, 헤어지는 게 항상 아쉬웠습니다. 앞서 언급한 인스타그램 속 영상에서 아이가 할머니에게 느끼는 마음과 비슷했죠.


정월 초하루, 어른이 아이들에게 덕담과 함께 건네는 용돈은 여전히 따듯한 전통입니다. 다만 그것이 설의 중심이 되어, 명절의 본질을 흐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배에 담긴 의미, 새해 첫인사에 담긴 마음은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 명절이 아이들에게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날'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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