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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직원XIII Jul 11. 2023

[Page 4] 좋은 분위기의 스타트업이 뭘까

Daily&Career

회사 오면 재미있어
여기 좀 이상한 것 같아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F 같아
넌 나를 좀 형처럼 생각하지?
회사보다는 학교 느낌이랄까
솔직히 자유로워서 진짜 좋은데
기대한 것보다 체계는 없는 듯
피드백. 협력. 디테일.
성장성장성장성장성장

#회사 분위기에 대해

우리 회사는 좀 지독하다.

유독 휴머니즘이 덕지덕지 발려 있는 곳.

스타트업에 기대하는 환경이 ‘자유로운 분위기’ ‘가족적인’ 등등은 맞지만 여긴 정말 그 자체다.

그래서 나랑 잘 맞지만 솔직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일반적인 회사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 딱딱한, 조심스러운, 경쟁, 성과, 까라면 까는, 진부한, 반복적인, 현상 유지… 뭐 이런 수식어랑은 하나도 안 맞는 곳.


내가 느끼기에 신규 입사자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끼는 우리 회사의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초기] 와! 다들 친절하고 복장도 출근 시간도 다 자유로운 편이네. 딱 상상하던 스타트업이야!
[중기] 생각보다 체계가 별로 없군… 그래도 다들 가족 같고 뭔가 열심이야.
[말기 1 - 열정폭발] 원래 이것이 스타트업의 참맛! 개고생! 정상을 향해 가.보.자.고!
[말기 2 - 희망가져] 느리지만 천천히 하다 보면 아마도 좋은 미래 오겠지~
[말기 3 - 반신반의] 이게 맞나... 일단 시키니까 해... 딴 회사는 근데 좀 어떤가... 에혀
[말기 4 - 나가버려] 주먹구구에 비전 없고 물경력 회사니까 난 나간다./옳다구나 너 제발 나가라.

뭐 어느 회사나 정착해 나가는 그 과정일지도 모른다.

4는 프린세스 메이커하다가 기껏 열심히 하다 보니 도적 엔딩 나오는 그런 거겠지.

사실 4는 회사와 개인이 서로 안 맞았던 건데 질질 끌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하고 있는 직무의 동료들만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엔딩 1과 2가 많다고 생각해서.

비교적 인적 구성에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회사 유지가 되는 것 같다.


발전적이지 않은 느낌의 '유지'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사실 현상 유지만 해도 대단하기는 한데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가끔은 ‘이렇게 해도 돈이 벌리나’ 같은 생각을 주제넘게 할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2년 전을 생각하면 이 정도 규모에 이런 새로운 업무라니 사람도 회사도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

아직 대박은 나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 같지도 않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우리 회사가 작살나게 AI 시장 씹어먹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




#멘토링 제도

우리 회사에는 멘토/멘티 제도가 있는데 1달 동안 신규 직원의 적응을 도와주는 역할이다.

꼭 업무적 사수의 개념은 아니고 정말 적응을 위한 친구 같은 동료 역할 겸

혹시나 운이 좋게 직무나 프로젝트 성향이 비슷하면 사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롤이다.

얼마 안 되는 간식비긴 하지만 그걸로 커피 값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나는 입사한 지 2년이 안 된 마당에 공식 멘토만 5번을 했다.

솔직히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이 장난으로 멘티 양성소라고 부를 지경이니 말 다했다.

물론 석사를 교육학으로 했고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강의도 여러 번 다녔으니

✌선생님✌베이스가 있어서 그런가...

누군가를 이끌고 찬찬히 알려주는 게 재능이라면 재능, 버릇이라면 버릇이긴 한데.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멘토였던 동료 중 퇴사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사실 대체로 만족하며 우리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동료가 많다.

그래서 그게 내 자긍심이다. 나 온보딩 잘 시켜준 건가?

내가 멘토를 하며 가장 집중했던 건 다음과 같다.


1. 멘티의 사소한 일상을 챙긴다.

    - 점심, 커피, 건강, 날씨... 뭐든 일단 관심을 가져주기

2. 왜 우리 회사/팀에 오고 싶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

    - 우리 목표와 맞으면 독려하고, 우리 목표가 아니거나 할 예정이면 현재 조직의 목표를 말해주기

3. 가장 우리 회사/팀에 기대되는 것과 걱정되는 것을 묻는다.

    - 기대는 연결해서 키워주고, 걱정은 최대한 차단하거나 피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기

4. 입사 직후 2주 동안 할 일을 만들어 준다.

    - 가능하다면 너무 바쁘지는 않되 하지만 최대한 무엇인가를 배우고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5. 일관성 있게 꾸준히 컨택한다.

    - 사소한 것이라도 계속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 시켜 안심하도록 만들기


"임직원님 완전 최고의 멘토" "헐 너무 감동이에요" "팀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이런 말 들으려고 멘토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이왕 시간과 체력을 썼다면

사탕 발린 말이라도 들어가면서 하는 게 기쁘지 아니한가.


이렇게 내가 지금까지 멘토 활동을 꽤나 잘한 것 같다고 으쓱하는 와중에도

사실 딱 한 명 조금 마음이 쓰이는 멘티가 있다.

나와 직무도 성격도 매우 달랐기 때문에 뭔가 적절한 온보딩이 되지 못한 느낌.

사실 그때의 내가 정신없이 바빠서 위의 다섯 가지를 온전히 못 지킨 것도 있다.

그분은 지금 열심히 업무를 하고 계시지만...

왠지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던 부분의 100%를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초기에 적응하고 목표를 잡는 데에 많이 힘들어하셨던 것 같은데...

직무가 달라서  내가 도울 수 없는 분야고, 마음을 챙겨주기에도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미안했다.

부디 나의 (구) 멘티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멋진 동료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휴직 상담 그 이후

앞에 와장창 회사 얘기에 멘토력(?) 자랑해놓고 말하기에 약간 부끄럽지만

나는 째끔 다녀놓고서는 번아웃 상담을 한 직원이다. (Page 1 참고)

사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기보다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싶어서 그랬다.

회사와 병원에 상담을 했는데… 의외로 의사가 만류를 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이런 거 하면서 우울함을 떨쳐버리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노는 것도 최장 한 달이지 잡념만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휴직 상담한 걸 다 취소했다.

프로젝트 이후로 모든 생각을 다 미뤄버려!

안 쉴 거지만 좀 천천히 가자고 마음먹으니까 오히려 편해졌다.

바닥을 찍고 나니까 뭔가 다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회사가 주입한 열정만 생각하면 나는 육체는 털렸지만 정신은 제법 아직 열정맨인 것 같다.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이 마음이 건강한 방향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요즘이다.

내가 아쉽게 여기고 있는 그 멘티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가 단단하게 버티고 서서 누군가에게 기깔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갑자기 무슨 초등학생 일기처럼 됐네.


-이상 밤 10시의 사무실에서 어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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